플리트비체와 자다르
3일차 여행지는 플르트비체와 자다르였다. 플리트비체는 디나르 알프스를 산맥을 따라 발달한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산맥에서 발원한 코라나 강이 석회암을 침식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지역은 워낙 험하고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라 ‘악마의 정원’이라고 했다는데 발칸반도를 점령했던 양 제국(오스트리아와 오스만)이 국경 문제로 군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규모가 여의도 면적의 100배 정도니 우리 일행이 2시간 정도 걸으면서 본 것은 1/100 정도로 맛만 봤다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충분히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6개월 전에 라오스에서 봤던 블루라군 같은 것이 수십 개 있는 곳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사실상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하면 1991년부터 10년간 있었던 유고슬라비아 내 비세르비아주의 대 세르비아주의 간의 대결장을 요약되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의 전쟁으로 시작해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등의 나라가 독립을 위해 세르비아와 싸우는 과정을 말한다. 1991년 세르비아의 극단주의자가 이곳을 점령하여 국립공원 경찰관을 살해하면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간 전쟁이 촉발된 계기가 되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으로 오면서 빈집들이 많이 보였는데 전쟁의 영향이라는 가이드 말이 이해되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간의 내전만 보면 힘센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으려 하는 나쁜(?) 나라로 보이지만 두 나라간의 역사를 보면 세르비아의 대응이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세계2차 대전 당시에 크로아티아는 자국 내 극단단체가 세르비아인 50만을 학살한 적이 있는데, 크로아티아가 독립하게 되면 세르비아인이 소수 민족으로 남게되면 또 그런 일을 당할까 해서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저지한 것이다.
호수 국립공원에 도착하니 이 공원의 상징 동물이라는 ‘곰’이 우리를 반긴다. 그리고 공원내 모든 시설물들이 목재 다리, 목재 집, 목재 표지판 ... 등 모든 시설물 들이 친환경 소재로 되어 있었다. 티케팅을 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 이곳에서 최고의 폭포가 우리를 반긴다. 무려 77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주위에 물줄기들이 마치 나무 뿌리를 연상케 하는 형태로 물보라를 내며 흐르고 있어 장관을 이루었다. 원래, 겨울 여행에서는 이 물줄기가 모두 얼음으로 변해 있어야 하는데, 다행(?)인지 이상 기온으로 제대로 폭포를 직관할 수 있었다. 전체를 배경으로 여러 컷을 찍고 호수 아래에서 폭포를 보기 위해 내려 갔다.
내려가면서 수정처럼 맑고 신비한 옥색의 호수에 접할 수 있었다. 호수 옆으로 설치된 나무로 된 다리로 이동하면서 위에서 본 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적지않는 규모의 여러 폭포들을 만났다. 드디어 폭포 밑에 도착했다. 가슴이 뻥 뚫리며 여행의 피로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폭포수가 나타났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상류를 따라 걸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다리 옆을 흐르는 혹은 고여 있는 물들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맑고 영롱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계단 형태로 되어 있는 물폭포를 여러 번 지나고 나니 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플리트비체 호수 면적의 80%를 차지하는 2개의 호수가 있는데 상류는 프로슈찬스코, 하류는 코자크라고 한다. 우리가 만난 호수는 코자크 호수였다. 그 호수를 멀리서 마주하고 난 뒤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 처음 내려 왔던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조금 전에 걸어 왔던 길과 호수와 폭포를 높은 위치에서 조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멀리서 보니 옥빛의 계단형 호수와 계단이 있는 부분에서는 작은 폭포하 어우러져 그야말로 환상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과연 아바타의 촬영지가 될만한 깊고 신비한 장소라 여겨졌다.
푸른빛의 물줄기를 가슴 한가득 품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했다. 다시 디나르 알프스를 따라 크로아티아의 아래 쪽으로 이동했다.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창밖에 들어오는 산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나무가 많은 산이었다면 나무는 듬성 듬성한 돌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검은색의 돌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제법 멋지다. 이 산을 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전에 그리스 여행하면서 봤던 산 모습이다. 그렇다. 이제는 디나르 알프스를 넘어 아드리아해 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산을 넘으면서부터 기후도 전형적인 지중해식 기후로 바뀌었다.
산 아래 거대한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자다르 항이다. 자다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방에 있는 해안 도시로 인구 7.5만의 조그만 도시다. 이곳의 구 도심은 중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우리는 이곳을 보기 위해서 온 것이다. 달마티아 지역은 크로아티아 남쪽 끝에서 중부지방까지로 대부분 디나르 알프스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드리아해 연안에 인접한 스플리트, 자다르, 드브로브니크와 같은 크로아티아 최고의 관광지들이 있는 곳이다. 달마티아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유명한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에 나오는 달마시안 개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자다르는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 식민지가 되기 전에 일리리아 인이 세운 도시라 한다. 이 도시가 오늘날에 이른 과정을 보면, 812년 비잔티움 제국령-> 12세기 후반에 헝가리 왕국 -> 1202년에 베네치아 공화국령 -> 오스트리아로 귀속되었다가-> 1805년 이탈리아 왕국 -> 나폴레옹 실각 후 다시 오스트리아로 ->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 -> 이탈리아 왕국으로 귀속됨(이번 여행 지역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주변 국가의 부침에 따라 비슷한 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름). 이렇게 역사가 복잡하다. 이 지역들이 대부분 주위 국가의 부침에 따라 이렇게 주인이 바뀌다가 티토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되었다가 독립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독립 전쟁 때 세르비아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으나 구도심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중세 시기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기에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먼저 간 곳은 바닷가였다. 이 해변은 모래사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명한 것은 아드리아연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날씨가 흐려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지만 아직 일몰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관광을 하는 동안 해가 구름 밖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 해변은 석양 외에도 세계 유일하다고 하는 바다오르간이 설치되어 유명한 곳이다. 자다르를 대표하는 크로아티아 건축가 니콜라 바시치가 설치한 것이라는데 구멍을 뚫고 건반을 만들어 바다의 파도를 이용하여 소리가 나도록 설계했다. 귀를 기울이니 과연 웅~ 윙~ 하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바다오르간 소리를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구 도심 관광을 시작했다.
맨 처음 간 곳은 성 도나트 성당이었다. 성 도나트는 9세기 경에 자다르 주교이자 외교관이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유행하기 전 비잔틴 양식으로 건립된 성당이라는데 크로아티아에서는 보기 힘든 비잔틴양식 성당이라 한다. 비잔틴 양식의 특징은 큰 돔과 화려한 색상과 장식인데 대표적인 건물이 이스탄불에서 보았던 성소피아 성당이라 한다. 성 도나트 성당도 외부만 보며 지나쳤는데 나중에 유료로 입장했던 네티즌들의 사진을 보니 성당 내부는 마치 그리스로마 시대 신전처럼 되어 있었다.
그 옆 건물은 자다르 대성당(성 스토시야 성당)이었다. 자다르 대성당은 달마티아 지역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는데 우뚝 선 성당의 종탑은 성벽 바깥에서도 보일 정도로 자다르 구 도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고 했다. 역시 내부 관람은 하지 않고 이동했다.
그리고 도심 속으로 들어가니 역시 연말 축제 분위기가 느껴지는 불빛 속에서 많은 인파를 만났다. 과거를 보존하면서 현대의 각종 상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드문 드문 내리는 빗발 속에서도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들은 밝다. 아마 이 지역 사람들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아서일 것이라 생각했다. 넓은 광장이 나온다. 나로드니 광장이다. 나로드니가 '민중', ‘사람’이니 민중들의 광장이라는 의미로 관광 중에 같은 이름이 자주 나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니 시청사나 공개재판소가 있게 되고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도 있었을 것이다. 남은 관광지에서도 비슷했다. 지금은 그 넓은 장소에 노천카페나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성벽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자주색으로 되어 있는 예배 중인 성 시메온 성당을 지나쳤는데 성당 건물 형태를 보면 6세기와 18세기에 만들어져 외부 모습에서도 모양이 서로 다른 역사적인 성당이라 했는데 어떤 부분인지는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이 성당은 수호성인 중 한 사람인 성 시메온의 관을 모신 성당이라고 했다. 방문 시점에도 예배 중이라 들어가 내부 모습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벽 앞으로 이동하자 성벽에 인접해 설치된 여러 상점과 함께 불륨을 잔뜩 높인 음악 소리와 수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지역에 나무로 덮힌 우물 몇 개나 나타났는데 총 다섯 개로 과거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졌다는데 지금은 상점 식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웃었다.
가이드와 함께 마지막으로 설명들은 곳은 성문이었는데 자다르 구 도심을 통하는 두 개의 문 중 육지의 문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바다의 문이다. 아마 바다로 접근하는 문과 육지로 접근하는 문을 의미한 것 같은데 어차피 육지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라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어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자유 시간 동안 성벽을 돌며 저녁이 시작되는 자다르 항을 마음 껏 즐기고 다시 도심으로 내려와 골목 골목을 누비며 중세 도시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다시 바다의 오르간이 있는 곳으로 모였다. 장엄한 일몰 광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쉽게도 태양이 구름에 가려 생각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건지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더 넓은 아드리아해를 넘어가는 신비한 코발트블루 하늘 속에 언뜻 언뜻 비치는 검붉은 태양빛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양이 넘어가자 바다 주변은 금세 시커먼 어둠으로 덮혔다. 그리고는 이곳의 또 하나의 명물이 ‘태양의 인사’를 보았는데, 지름 22미터의 LED의 전지가 바닥에 내장되어 있어 낮 동안 충전한 뒤 밤 동안 여러 형태의 신비한 모양으로 번쩍이며 바다 오르간 주변을 밝혀 주고 있었다. 이 커다란 LED 원구 위에 올라 다양한 색상이 변할 때마다 멋진 사진을 남기며 남은 시간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