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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Jan 30. 2024

발칸여행 5

메주고리예, 코르츌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에서 메주고리예까지는 40분 정도 걸렸다. 메주고리예는 ‘산과 산 사이의 지역’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는데 해발 200미터의 위치에 있는 이름 없는 농촌 마을이었으나 마을의 여섯 아이가 성모마리아를 직접 보았다는 스토리로 유명해진 곳이다. 1981년 6월에 처음에는 2 아이가 목격했으며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6 아이들에게 성모가 나타나 평화의 메시지 등을 전했다는 주장이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곳곳에 이런 성모 발현지가 있어 신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고 관련 지역에는 관광객과 신자들 대상으로 편의 시설과 성물(聖物)과 같은 다양한 기념품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이드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은 이런 것을 믿지는 않지만, 성모가 나타났다는 곳은 한결같이 어렵게 사는 깡촌지역이라 이런 지역 사람들이 그것으로 먹고 살게되는 현상을 보면 성모의 뜻이 담긴 것도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 지역의 이런 사실은 로마카톨릭으로부터는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하는 지역이라 한다. ‘초자연적인 존재의 발현’으로 볼 수 없기에 인정하지는 않아 공식적인 순례는 금하지만 개인적인 여행은 허락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런 배경이 있는 지역에 이곳 4천여 명이 거주하는 곳의 중심에 자리잡은 성 야고보 성당은 연말연시, 새해 송구영신을 맞는 날이라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호텔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당으로 산책을 나갔다. 성당에는 12월31일 자정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된 불빛과 더불어 새해를 맞는 각종 장식물들이 신자들과 관광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한편, 마침 내리는 부슬비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었다.     

예배를 드릴 생각은 없었기에 성당 외관만 둘러보고 치유의 예수님 동상이 있다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에 엄청난 야외 좌석이 펼쳐져 있었다. 한꺼번에 오천 명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소라고 했다. 그리고 어둠컴컴한 길을 따라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 보였는데 이제 그만 돌아가려고 하는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곳이 보였다. 바로 청동으로 된 예수상으로 예수의 무릎에서 흐르는 물을 적셔 아픈 부위에 갖다 대면 낫는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그곳이었다. 사람들 소문과는 달리 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우리도 기다렸다가 체험을 해보자며 줄 끝에 서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부슬비 속에서 기다리는 동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기도하고 준비한 헝겊으로 예수의 무릎을 닦고 기도하 내려오는 시간이 제법 많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줄 안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꾸 끼어든다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장난스레(?) 참여해보자는 생각이었지만 그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건한 태도와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고 있었다. 같이 갔던 분은 개신교를 믿는 분이었는데 극진한 자세로 예수 동상에 꿇고 기도하였다. 나는 그분들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 전했는데 이렇게 사진 찍는 것마저 진지한 의식에 방해가 될까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우리 순서가 되어 아내와 같이 간단히 기도하고 내려왔다. 후에 아내는 내가 그곳에 서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또 그 의식에 참여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현장 분위기에 압도된 셈이다. 나중에 아내와 나는 예수님 정강이에서 물이 나오는 걸 느끼지 못했다며 우리는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일행 중 한 분

다음 날 아침, 다시 야고보 성당으로 갔다. 전날 밤보다 빗줄기가 강해졌다. 새해를 맞느라 어수선했던 전날 밤 분위기가 느껴졌다. 성당 주위와 오천 석의 좌석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전날 기도 드렸던 예수님 동상으로 이동했다. 전날 동상에 못 갔던 일행들은 다시 막 길어지기 시작한 줄 끝에 서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십자가의 길이라고 명명된 그 길을 계속 올라갔다. 여섯 아이가 성모 출현을 목격했다는 설명을 해 놓은 게시판 같은 곳에 가서 가이드 설명을 들었다. 이 중 한 아이는 지금 55세인데 여전히 성모와 소통하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어떤 종교에서나 이런 신비한 사건은 전해지기 마련이지만 여전히 성모와 소통하고 있다는 그 성모의 존재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공동 묘지에서 보이는 산 꼭대기에 십자가가 설치된 것이 보였는데 그 지점이 바라 여섯 아이들이 성모를 목격한 장소라 했다. 

비를 맞으면서 두어 시간 자유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우산을 들고 주위 상가와 마을을 둘러봤다. 1월 1일 신정이라 가게 문도 거의 열지 않았지만 성물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 몇 곳은 휴일에도 가게를 열었다. 성모 발현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모여든 장소이어서인지 계획 도시(마을)처럼 깨끗하고 정열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마을을 돌다가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관광지로 향했다.




다음은 다시 크로아티아에 위치해 있는 코르츌라섬이었다. 지도에서 보듯 가까운 곳을 이동하지만 국가간 이동이라 반드시 출입국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다. 육지간 이동할 수 있는 나라가 인접해 있지 않는 곳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버스에서 여권을 거두어 출입국 심사가 이뤄진다. 쉽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버스에서 전부 내려 한 사람씩 여권 심사를 거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행 비수기라 출입국 장소에 대기하는 버스도 많지 않았고 대체로 큰 부담없이 통과할 수 있었는데, 이곳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걸리더니 전산 장애라 기다려야 한다며 모두 내리라고 한다. 다음 여행 일정에 차질이 시작된 것이다. 미리 예약된 배 시간, 현지 가이드 시간 때문에 가이드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점심 시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늦었으나 선장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우리 일행들을 환영해 주었다. 가이드는 비수기라 관광객이 많지 않은 덕을 본 셈이라고 했다. 게다가 현지 가이드도 1월 1일 공휴일 시간을 내준 상태라 일행들이 점심이 늦어 허기진 상태였지만 관광 일정을 먼저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 가이드는 싼타 모자를 쓴 밝은 여성 분으로 썬샤인이라는 별명만큼 빛나고 밝은 분이었다. 배를 몰던 선장과 부부라고 한다. 도착 기념으로 싱싱하고 커다란 오렌지 하나씩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 주었다. 현지 가이드의 열정 덕분에 허기를 참고 30여분 진행되는 설명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다음 일정 속에 있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드보르브니크의 미니 버전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해안을 끼고 구축되어 있는 구시가지는 전체를 금방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게 느껴졌다. 가이드를 따라 구시가지 성문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성 전체는 물고기 모양처럼 생겼고 길은 양 사방으로 물고기 가시 모양을 연상하듯 가지런히 나 있었다.

생선 가시처럼 생긴 코르츌라 여행지

계단을 따라 타운 게이트에 있는 탑을 향해 오르니 크지 않은 광장이 나타나고 광장 주변으로 공개 재판정과 같은 관공서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는 베네치아가 이곳을 점령했던 흔적이라며 날개달린 사자상 석조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광장을 지나 성당 하나가 나타났는데 미카엘 대성당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시커멓게 변한 건축물이었는데 문을 가르키며 문을 둘러가며 사람에 태어나서 죽기까지 생로병사 과정을 말해 주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유심히 살펴 봤다.      

성 미카엘 성당

이동하면서 골목이 큰 건물에 비해 아주 좁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설계를 한 것은 바람을 잘 통하게 하면서 강풍에도 잘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다 쪽으로 난 골목길은 휘어져 있었는데 차가운 북풍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골목 골목마다 고양이들이 곳곳에 자유롭게 오가거나 따뜻한 곳에 앉아 우리 일행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고양이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양이가 많은 곳이기도 하단다. 이후에 관광하게될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는 고양이가 그 도시의 상징 동물일 정도로 동유럽 곳곳은 고양이들이 살기 좋은 천국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다음 이동한 곳은 이곳의 중심 지역에 위치한 성 마르코 성당이었다. 성당 내부는 볼 수 없었고 외부에 이상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성 조각이 눈에 띄었다. 의미는 몰랐지만 이상했다. 그리고 이곳 수호성인 모습도 성당 앞에 우뚝 자리잡고 있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을 수호해 주는 성인이 있다는게 낯설다. 우리 나라 같으면 마을을 지켜주는 마을 신이나 산신 같은 것일텐데 이곳에 구체적으로 살았던 사람을 그렇게 모시고 사는 것 같다.  

성 마르코 성당
성 마르코 성당 여성 조각과 수호성인

이어서 간 곳은 이곳 사람들이 이곳 출신이라고 믿고 있는 마르코폴로 기념관이었다. 마르코폴로는 베네치아 사람이지만 이곳 사람은 그렇게 믿는단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이곳을 점령했던 것으로 보아 충분히 그런 얘기가 나올만 하다. 사람이 평생을 사는 동안 여러 곳을 옮겨 살기 마련이고 유명인이 잠시라도 머문 곳이라면 일부러라도 기념하기 마련이니까... 마르코폴로 기념관 역시 닫혀 있어 외부만 보고 지나쳤다. 그리고는 식사를 포함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벌써 2시가 넘었다. 1월 1일 휴일 유일하게 열었다는 음식점으로 달려 갔다. 음식점은 입구에서부터 담배 연기로 가득차 있고 담배연기 냄새가 배겨있는 곳이었지만 대안이 없어 일행들이 함께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대충 보고 피자 1가지씩과 음료를 시켰는데 종업원이 조금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돌아갔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거대한 피자 4판을 주문한 것이었다. 옆 테이블 일행이 웃으며 너무 많이 주문한 것 같아 말리려다가 그냥 뒀단다. 하는 수없이 한 판은 옆 테이블에 주고 나머지 3판을 넷이서 나눠 먹었다. 나로서는 태어나서 가장 피자를 가장 많이 먹은 날이 되었지만 피자 맛은 이 지역의 담백한 빵맛과 함께 태어나서 최고로 맛난 피자를 먹은 날이기도 했다. 가이드에게 이 에피소드를 얘기했더니 에피소드가 아니란다. 이 지역 사람들은 실제 개인당 한 판씩 시켜놓고 맥주 마시며 종일 먹기도 한단다.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피자 1판
코르츌라 해변

식사 후 해변을 돌면서 전체 도시 구조를 보면서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허기를 면해서인지 더 또렷하게 멋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곳곳에는 호텔, 음식점, 기념품점 등 각종 생활 편의 상점들이 있었지만 1월 1일이라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멀리서 둥글고 멋진 타워가 보인다. Kanavelić 탑이라는데 반원형의 오래된 탑으로 이곳이 성벽이 시작이 되는 지점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코르츌라 구시가지 관광까지 마치고 다음 날 여정을 위해 다시 네움이라는 곳에 있는 숙소로 가기 위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이동했다. 네움은 아드리아 해안에 관광용 숙소와 리조트가 밀집한 지역인데 아무래도 크로아티아보다는 물가도 싸기 때문에 이곳을 이용한다고 했다.     

네움 숙소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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