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거야 쌉 소리
유난히도 어둠이 빨리 오는 겨울이 싫다. 어두운 방에서 빛나는 액정 화면에서 의미 없는 정보들을 성의 없는 손가락질로 휙휙 넘기다 보면,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은 차분해지며 묘한 편안하면서도 불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질구질하고 식상하고 징그럽게 자리 잡고 있는 너라는 기억. 그리고 이런 시간에 다시 슬그머니 그걸 꺼내보는 나. 아직도,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궁금함이 몰려온다. 나 없이도 잘 지내고 말 텐데. 그런 사람인 거 소름 끼치도록 알고 있는데도 궁상맞게 생각한다. 아기는 몇이나 낳았을까. 고양이도 잘 못 놀아주던 넌데 아기에게는 또 다르게 물고 빨고 안아줄까. 아니면 혹시나가 역시나처럼 너의 부인은 독박육아에 힘겨워하고 있을까. 아이는 몇이나 낳았을까. 지금쯤이면 한 명 더 낳았을까. 한 명은 외로워서 안 된다고 너는 생각할 텐데 아마 그녀는 둘째를 임신 중일지도 모르지.
궁금하고 궁금해. 근현대사를 특히나 좋아하던 너. 서울의 봄은 아마 꼭 극장에서 보고 싶을 텐데 아기 때문에 어떻게 하려나. 집에서 나중에 보려나. 서점에서 책 보는 걸 좋아하던 너. 지금도 광화문에 종종 출몰할런지, 이제는 너의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할런지.
너도 가끔은 쓸데없어도 내 생각 한 번쯤은 해 줬으면 좋겠다. 이랬던 앤데 잘 지내려나 한 번쯤 그냥 문득 그렇게 한 번쯤.
헤어져도 사람은 남는 줄 알았는데 난 널 그리워도 못하고. 너의 이야기를 할 사람도 없고. 다들 이제 네 이름을 내 입에서 듣기도 거북해하고. 이제 그만 널 놓아주라 하고. 이제 네 이야기를 하면 난 이혼한 전남편 이야기를 사골국처럼 우려먹는 사람 취급당하고. 널 추억할 수 있는 사이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혼자 널 추억하고 곱씹는 것조차 내가 죄를 짓는 것 같아 한심하고 초라해진다.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라고 비난받고 난 내 마음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 된다.
잘 사는 게 복수하는 거야.
난 이제 별로 복수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정말 그냥 내 맘이 그런데. 나도 잘 살고 행복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고. 그거랑 별개로 널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것조차 거세당하는 기분에 씁쓸하다. 내 핸드폰 사진첩에 아직도 너무 많은 사진이 있는데 내 삶의 반을 함께한 사람인데 그렇게 모질게 도려내버려야 하는 건지.
유쾌하진 않지만 괘씸한 녀석이었지 이젠 웃으면서 말해줄 수 있는데. 역시 겨울이 싫다. 밤이 너무 길어.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꼬리를 물고 눈물은 쓸데없이 왜 나는가. 절절한 감정도 아닌 것이 참 이상하구먼. 이건 네가 그리운 마음보다 너를 그리워하는 행위자체를 금지당하는 내가 서글퍼서 흘리는 눈물이라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