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고립은 다른 출발점일까.
이번 감기가 도무지 떨어지질 않는다. 증상은 7월 중순부터 기침으로 시작되었다. 나아질 듯 나아질 듯 지나가던 감기는 열흘 전부터 점점 심해져 어제는 정말 나를 드러눕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7월부터 하루도 쉬지를 못했다. 계속된 공사와 가게 이전과 이런저런 스케줄이 겹쳐 주말이고 빨간 날이고 쉬기는커녕 아침 6시에 현장에 나가 하루종일 땀이 나서 저녁에 녹초가 되어 집에 오면 에어컨 켜고 뻗었으니.
이번 여름은 정말 가혹했다. 가만히 있어도 바람 한 점 없는 습한 날씨는 진심으로 물속에서 숨 쉬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현장은 더웠다. 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그냥 더웠다. 미치도록 덥고 습했다. 늘 하던 데일리 목걸이도 벗어버렸다. 목부터 가슴 아래까지 땀띠가 나서 피부가 뻘겋게 올라왔기 때문이다. 땀띠가 이리 가렵고 쓰라리고 신경 쓰이는 존재인지 오랜만에 깨달았다. 현장정리를 위해 쓰레기를 치우면 5분도 되지 않아 온 얼굴과 몸은 샤워기라도 잘못 틀어 온몸에 물이라도 맞은 듯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띠용 파우더를 사서 바르는 것이 샤워 후 일상이 되었다.
더위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냥 온몸으로 더위를 맞는 수밖엔 방법이 없었다. 그러고 나면 더위를 먹어서인지 식당에 가서 에어컨을 쐬어도 습도로 눅눅하고 추워지고 입맛도 없고… 몸은 정상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온 에너지를 풀가동해서 돌리느라 어찌나 힘든지 체력은 고갈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어도 말할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한테 말해봤자 다들 돈 버는 거는 그렇게 힘든 거다.라고 할 테고. 에어컨 쐬고 사무직 한다고 안 힘든 줄 아냐.라고 할 테고. 나이 먹을수록 느끼는 것은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나의 힘듦을 이야기해봤자 돌아오는 건 꼰대소리 나 그래도 일 하는 걸 감사하라는 성인군자 같은 피드백 따위뿐이다. 공감이나 위로는 감히 바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왜 나이 먹으면 외로워지는지 여실히 깨닫고 있다. 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는 굳이 저런 이야길 해서 걱정 끼지고 싶지 않고 굳이 이야길 해도 내가 바라는 반응을 얻기도 쉽지 않고. 결국 나도 머릿속으로 파도가 치지만 입을 꾹 닫게 된다. 아무도 나 같지 않고 아무도 나일수도 없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러다 보니 점점 고독해진다. 그나마 일적인 고충을 많이 나누는 같은 업계의 언니도 상황이 나와 같지가 않다. 부부가 같이 하다 보니 남편이 상당 부분 가게와 현장 일을 맡고 있고 그 언니는 이런 현장에서의 고충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이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편인 그 언니랑도 전화로 실컷 이야기하다 오늘도 하루종일 에어컨 틀어놓고 집에서 강아지랑 간식으로 씨름하며 보냈다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이상한 알 수 없는 얄미움이 올라오는 것이다. 뭐야. 내 상황의 백분의 일도 모르는 이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말해봤자 뭐 하자는 거지. 갑자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 자신이 한심해지는 것이다. 결국 다시 입을 닫는다.
혼자 인테리어 일을 하는 여자분을 만나 수다 떨고 싶은데 이쪽 일이란 게 거의 다 남자 혼자 하거나 부부가 하는 일이 많아서 수다 떨 동성지인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내가 겪는 고충은 남자들이 커버하고 있는 부분이라… 시공자들과의 어려움, 현장에서의 힘든 부분 등등 배우자 없이 여자 혼자 인테리어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서럽고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썩은 울타리라도 필요한 것인가 생각하다 다시 이를 악 문다. 아니다, 아니다. 그냥 혼자 힘들고 아파하자. 누구나 외롭지 않은가. 정호승 님의 시처럼 하느님도 외로워서 우시고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은 마을로 내려오지 않는가.
그러다 어제 집에 와서 감기몸살로 열이 확 오르면서 마음의 둑이 터져버렸다. 점심때까지도 버틸만했는데? 오후부터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목공반장님께 들어가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세시 즈음 넘어 집에 주차를 했다. 그런데 그 후로 기억이 드문 드문 마치 술 취한 것처럼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들어와서 간단히 어찌어찌 샤워를 했는데 열이 확 오르면서 어떻게 할지 모르고 덜덜 떨며 이불을 덮고 누웠다. 온몸이 너무 아팠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정말 서러움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철썩철썩. 추운 겨울날 맨몸으로 모래사장에 누워서 아프도록 차가운 파도를 그대로 맞는 기분이었다. 너무 아파. 그런데 어쩌지.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응급실을 가긴 가야겠어. 너무 아픈데 알아주는 이도 없어. 나 혼자 그냥 견뎌야 해. 난 아무도 없으니까. 엄마한테 전화하거나 언니들한테 해 봤자 그들이 달려올 수도 없는 거고 병원 가라고 밖에 못할 거고 내가 해결할 일이야. 그런데 너무 힘들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지. 왜 이렇게 아픈 걸 견뎌야 하지. 뭘 위해서. 뭘 그렇게 대단하게 좋으려고. 그냥 쉬고 싶어. 그냥 그만두고 싶어.
한참을 울다 보니 코가 막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어 앉아서 또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었던 내 연약한 마음을 눌러 담으며 좀 진정이 되고 겨우 옷을 입고 택시를 불러 응급실에 갔다. 열은 37.7도. 여차저차… 응급실은 너무 다양한 사람이 있고 시끄럽고 주사는 너무 아프고 하니 패스하고… 다행히 코로나도 아니고 폐렴도 아닌 듯하다고 진통제와 열 내리는 수액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열은 내린 듯했으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된 듯 무너져 있었다. 내일 가게 이사만 아니면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을 텐데. 가게 이사라 응급실에 다녀온 이유도 있었다. 이사해야 하니까… 친한 인테리어 사장 두 명이 이사를 도와준다고 해서 따로 이삿짐 직원을 부르지 않았는데 한 명은 오늘 허리를 다쳤다는 둥 뭐 한 명은 자기도 몸살이라는 둥 비가 온다는 둥… 듣기 싫어서 됐다고 쉬시라고 그러고 그냥 이삿짐센터를 부랴부랴 불렀다.
나이 먹고 혼자되니 성격이 괴팍해지나 보다. 사실 둘 다 일당을 안 줄 거 아니었는데 조금이라도 내가 아쉬운 소리는 듣기 싫고 그런가 보다. 그냥 내가 짜증 나는 건 그런 부분이다. 다들 책임감이 정말 너무 없다. 자기들 사정과 기분이 왜 그렇게 중한지… 한편으로는 그러지 못한 성격의 나는 그런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냥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해버려야 하는데. 뒷 일이고 나발이고. 왜 나는 나만 끙끙거려야 하나. 너무 소심해. 이래서 나이 먹으면 돈돈돈 하게 되는구나. 인정이니 친분이니 아무 소용없구나. 진작에 돈으로 처리하면 될걸… 내가 돈으로 해결할 거 돈으로 하면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되는데… 큰소리라도 치는데. 나이 먹고 비굴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돈 마저 없으면 정말 서글프구나 싶다.
사실 가게이전도 친한 지인과 큰 언니한테만 말했다. 다들 너무 반대가 심해 돈 한 푼 보태주지 않으면서 잔소리는 엄청 심할게 뻔해서 그냥 내 선택에 대해 나 혼자 감당하고 나 혼자 잘 되든 못 되든 버텨갈 심산이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드네.
내가 선택한 고독인데 점점 고립되는 기분은 뭘까. 아파도 아프다고 할 사람 없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할 사람 없고. 그냥 화가 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화가 난다. 그런데 뭘. 다들 그렇게 사는 걸. 그냥 이 시간이 지나면 또 나아지겠지. 덜해지겠지. 열이 다시 오른다. 해열제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