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내가 살아왔던 용인의 집.
그 집 내방의 책꽂이 한쪽엔
다 찍은 필름 한 롤이 놓여있었다.
어쩌다 햇살이 아주 많이 들어오는 날이면
필름 위에 쌓인 먼지들의 두께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대학 커머셜포토시간에 찍었던 것으로 짐작이 갔다.
그러니 이제 9년이 넘어가는 필름이다.
가끔 눈에 띌 때마다 대체 무슨 사진이 들어있는지 너무 궁금해 현상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얼마 전에 그 필름을 집어왔고
잠시 잊고 있다가 며칠 전에야
인화를 맡기게 되었다.
사진에는 대학 동기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너무 오래돼서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올지 의문이었지만
다행히 색이 좀 많이 바랬을 뿐 스쳐봐도 누군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소식을 알고 있는 동기들도 있지만
어디서 무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동기도 몇 있었다.
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소식을 수소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이 필름이 아주 오랜 시간 그랬던 것처럼
녀석들의 삶도 그렇게 가만히 놓아 두고 싶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며 즐거웠던 거로 충분하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날들이 찾아올지 모른다.
다만 무엇으로도 행복할 일이 없을 것 같은 그 언젠가를 위해
지금의 순간들을 담은 필름 한 통...
금방 찾지 못할 곳에 꼭 남겨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