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 세계
일이 아닌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20대 사회 초년생부터 6년을 다닌 회사에서 쫓겨나듯 이직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나는 나에게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다.
어떻게든 그 신발에 발을 맞추려고 매일매일 애를 썼다. 내 발이, 발보다 작은 신발에 맞춰 작아지길 바라며.
길을 잃은 그곳에서 나는 그것을 성장이자 도전이라 불렀고, 악착같이 숨구멍을 찾아가며 버텨갔다.
그러나 득이 있으면 실도 있듯 도전으로 성장하는 것도 있었지만, 미처 알지 못한 채 점점 잃어가는 것도 있었다.
그건 바로 ‘나 자신’ 이었다.
본래의 나 자신을 무시하고 점점 더 이상한 곳을 향해 걸어가며 나를 잃어갔고
‘나’ 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내면에서는 점점 더 이상한 괴로움이 깊어갔다.
그렇게 괴로움에 잠겨있을 무렵,
숨구멍을 찾는 데 점점 더 급해진 나는 ‘취미’라는 영역에 관심이 갔다.
다른 사람들은 삶에서 다양한 취미를 만들며 스트레스도 이겨내고, 일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문득 나에게 취미가 있는지 돌이켜 보았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종종 했지만, 사실 그건 건강한 삶을 위한 심폐소생술에 가까웠다.
나도 취미를 가지고 싶었다.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숨을 쉴 수 없는 이곳을 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마치 아가미 없이 심해로 들어온 돌연변이 물고기 같았다.
취미.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소개에 취미를 적는 칸이 있었다.
항상 그 빈칸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했고, 그렇게 빈칸을 보며 고민하던 나는 그대로 29살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이 칸을 채우지 못해 고민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였다.
“취미라고 했는데, 그것이 진짜 나에게 맞는 취미가 아니면 어떡하지?”
특히 실패에 따르는 금전적 손해를 두려워했다. 취미를 찾을 때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범위를 정해두고 모든 것을 눈으로 감상하며 상상으로 대체했다.
여러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다양한 경험에는 그만큼의 경제적 비용과 시간적 비용이 들어간다. 나는 그 모든 돈과 시간의 허비가 아까웠고, 그것으로 인해 생긴 ‘실패’라는 게 너무 싫었다. 취미를 찾겠다고 찔러본 그곳이 나와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웃긴 건, 그러면서도 자신의 취미를 사랑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참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뭐가 그리도 두렵고 무서웠는지.
결국 시간이 더 흘러, 정말 다른 곳에 몰두하지 않고서야 불안을 떨칠 수 없게 되었을 때.
실패의 두려움보다 불안의 두려움이 더 커져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비싼 비용을 지불해 취미를 만드는 것으로 도망치기를 결정했다.
다짐을 한 바로 다음날, 연희동에 있는 바늘이야기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패키지 상품을 구매했다. 첫 번째 도전은 난이도 하, 코튼 10 미니 스퀘어 가방이었다.
이 패키지는 전체 과정이 동영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입문자에게 딱 좋은 구성이었다.
프린팅 된 도안 1개, 코튼 10 실 1개, 코바늘 10호 1개, 돗바늘 1개, 마커, 쪼꼬미 라벨 1개를 바구니에 담아 결제하면 된다. 준비된 코튼 10 실은 컬러가 다양해서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그린 컬러를 골랐다.
바늘이야기 연희점 2층 카페에서 바로 패키지를 풀어 코바늘에 실을 걸었다.
도안은 기호로 되어 있어서 기호 읽는 방법부터 배워갔다.
마치 어린아이가 한글을 배우듯, 코바늘 세계의 언어와 규칙을 배워갔다.
초반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학습했고, 거듭해서 풀고 다시 사슬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게 재밌어?”
몇 시간째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남편은 즐겁냐고 물어봤다.
나는 즐거웠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즐거웠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껴보게 되었다.
문득, ‘맞아 진짜 즐거움은 이런 거였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새로운 것을 배워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한 스텝 한 스텝이 즐거웠다.
그리고 틀리면 다시 풀어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즐거웠다.
틀리면 풀고. 다시 처음부터
틀리면 풀고. 다시 처음부터
틀리면 풀고. 다시 처음부터
몇 번이고 반복하니까 이상한 자신감이 속에서부터 꾸물꾸물 올라왔다.
‘나 이거 무조건 완성할 수 있겠다. 풀고 다시 하면 되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나를 가둔 건 ‘틀리면 안 된다.’라는 이름의 감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조금의 실수도 없는 완벽함을 향해 계속해서 채찍질하는 곳이었다.
모든 환경을 떠나서 결국 그 감옥을 만든 사람도, 채찍질하는 사람도, 그곳의 노예도 알고 보니 전부 나였다.
그런 세상에서 죽지 않으려 꾸역꾸역 숨구멍을 찾아 뜨개질 세계로 들어와 보니
틀리면 풀고, 다시 처음부터 몇 번이고 반복해도 괜찮다 말했다. 우습게도 그 말을 하는 것 또한 나였다.
묘하게 틀려서 풀고 다시 하는 그 과정이 참 안심이 됐다.
집으로 돌아와 자정이 넘을 때까지 뜨개질을 했다.
일요일 밤이면 일찍 잠자리에 누워 지옥 같은 월요일을 준비하던 내가
늦은 시간가지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는 변화가 새삼 놀라웠다.
그래도 뜨개질하는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출근을 해서도 얼른 퇴근해서 뜨개질이 하고 싶었다.
사실 이때는 뜨개질 시간이 도피처였다. 현실을 잠깐 잊게 해주는 느낌이 좋았다.
한 단계, 한 단계 배우는 것에 집중해 그것을 정복해 나가고 바로 결과물이 보이는 세계에 있다 보면
모든 압박과 엄격함,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또 몇 번이고 다시 풀어서 시작할 수 있기에 실패의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취미란 것인가? 직접 취미를 가져보니 취미의 역할이 기대 이상으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29살에 취미를 만들었다. 이제 누군가가 취미를 물어봐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실, 바늘 그리고 도안과 나만 있는 세계에서 그 순간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아 좋다.”
미니 스퀘어 가방을 이틀 만에 완성하고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뜨개 작품을 만들어서도 좋고. 그 과정을 경험해서 더 좋았기 때문이다.
뜨개질은 ‘앉아서 하는 골프’라는 별칭이 있다. 그만큼 바늘, 실, 도안 등 직접 뜨개질을 하기 전까지 구매해야 하는 보조품들이 많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비싼 취미는 절대 사양하던 내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비싼 취미를 덜컥 시작했다.
비록 새로운 영역의 문을 연건 나의 순수한 내적 동기가 아니었지만
현실의 시간이 멈추는 그 공간에서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주인이었다.
결과와 과정을, 반복과 완벽을
실패와 성공의 균형마저도 내가 정하는 세계.
틀린 곳이 있으면 언제든 풀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처럼 단순하고 관대한 일이 또 있을까.
실패를 허락해 주는 유일한 세계에서는
틀리는 것은 끝이 아니다. 다시 시작점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다시 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