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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Jul 15. 2018

고독이라는 병

중학교 때 읽었던 콜레라시대의 사랑이라는 책의 서문에는 

'세상에는 불치병이나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고 써있었다, 내 기억에.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내용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짧으니까. 


친구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병원침상에 누우셨다.

전조증세만 있던 파킨슨병이 느닷없이 악화한 것인데, 모질게도 이 병이 현실과 상상을 극명하게 가르는 것이다. 아버지는 바로 지난주에도 전철을 타고 을지로에서 지인과 평양냉면을 먹었고 어제는 국제전화로 자식내외와 통화를 하면서 손주의 재롱으로 행복에 겨웠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했을 뿐인데 난간을 짚지 못하고 슬리퍼를 한짝도 꿰어 신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몇번이고 넘어지고 부닥쳐서 아들딸보다 어린 간호사에게 시퍼렇게 혼이 났다. 어디 보자ㅡ 네 놈이 감히 나를! 싶어서 자꾸 일어서는데 머리가 핑핑 돈다. 힘 좋은 간호사 둘이 스치듯 누른 어깨가 부서질 듯 아프다. 그들은 아버지의 몸을, 엄밀히 말하면 배와 다리를 침대에 묶어두고 갔다. 이 상태로 일어나셔서 머리가 깨져도 본인은 모르세요. 그니까 얌전히 누워계세요. 그들은 꼬박꼬박 경어를 쓰면서, 쳇머리를 흔들면서 사라졌으리라. 

친구는 섧게 울었다. 


지난 봄 한국에 나온 친구와 함께 뵈었을 때만 해도 정정하시다 못해 사업하실 때처럼 강건해보이셨더랬다. 친구가 십여년 만에 한국에 나온 것이 가슴벅차셨을까, 십여년 동안 그리워만하던 딸의 얼굴을 부여잡아 만지고 코를 맞대고 밥을 먹고... 하마 그렇게 다시 딸을 보내고나니 불과 몇 달만에 딸의 부재가 심장을 부여잡았을까. 홀로 일어나 밥을 먹고 잠드는 동안 늙은 몸은 손발이 움직이는 법을 놓아버렸을까. 안다. 경망스럽다. 이런 망상. 


기어이 입 밖에 낸 것은 친구였다. 


외로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 같아. 

특히 노인에게 한번 외로움이 깃들면 방법이 없을 거야. 


부정하지 않았다. 

고독은 그 어떤 감정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타인에게 옮아온 것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 앓는 병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위로나 알은 체도 도움이 되지 않을 터- 외로움은 사람을 깊이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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