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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Aug 15. 2018

여름들

여덟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미 섭씨 32도를 찍었다. 잠에서 깰 때마다 목덜미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의 무게를 느낀다. 퍼머할 때 뒤집어쓰는 열기구를 뒤통수에 깔고 누운 것같은 아침만 한달 보름 째다. 여름을 좋아했다 그런데. 지겨운 여름이라고 말하기조차 지겨운 여름은 올해가 처음이다. 


바람 끝에 찬 기운이 느껴질까싶은 기대도 매번 꺾인다. 오늘은 특히 나가기가 싫어서 양말을 손에 쥐고 현관에 잠깐 서있었다. 어제 한 것처럼 오늘 하자, 는 모토는 매사 매순간 무겁게 다가온다. 운동도 밥도 친구도 연애도 어제처럼 항구여일하기가 쉬운 일인가. 


근린공원을 도는 사십분의 산책을 어제처럼 오늘도 걷는다. 십분만 지나도 티셔츠고 바지고 땀으로 얼룩덜룩해진다. 소매로 땀을 닦다가 태울 듯 꽂히는 여름의 태양을 바라본다. 감히 찰나의 맞섬도 허락하지 않는 맹렬한 기세만큼 찰나에 찬 바람을 실어올 계절의 흐름이, 무서워진다. 시간 앞에서 인간은 참... 


폭염의 기세가 비교되던, 잊고 있었던 1994년 여름의 골목골목이 생각났다. 찬물에 씻어 냉장고에 넣어둔 포도를 송이째 들고 먹었던, 젖은 머리째 거실에 누워 얼음을 입안에 넣고 도르륵 굴리던, 아침마다 나팔꽃이 피었다 지고, 맨드라미가 빼들빼들 마르던 계절. 나는 뜨겁게 달궈지다 도시와 함께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인생의 목표는 좌절되고 연애는 지리멸렬했다. 욕망과 좌절을 오가는 매일매일 내 청춘은 너무 뜨거워서 데인 듯 쓰라렸다.  


유독 여름의 기억이 많은 것은 좋아한 만큼 에너지가 많이 일어서였을 것이다. 또한 그 에너지가 어지러운 향방에 닿아 부끄러운 기억이 유독 많은 탓이다. 섣부르고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신중하지 못했던 순간들은 대개 여름의 기억에 모여있다. 그래서 날 것으로 생생한 것인가. 여즉 생생하게 부끄러운가 하면 가슴이 콩닥한 것을 보면. 

하아, 나의 여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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