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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Sep 25. 2018

순천과 벌교 사이 형설서점

순천에서 벌교로 가는 이차선도로에 느닷없는 간판과 함께 덩그마니 펼쳐진 형설서점.


명절연휴가 시작되기 전 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인 한창기 선생의 박물관을 찾아 순천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선암사에 들러 합장하고 그리운 이름을 엎드려 불렀다. 신 벗어놓은 댓돌이 모래알처럼 빛나서 대웅전 귀퉁이에 웅크려 졸고싶더라만 아쉽게도 당일치기. 아름다운 경내는 눈으로만 훑고 초가을볕에 젖은 눈가를 말렸다.


박물관 얘기는 나중에 기회를 만들기로 하고-


지난봄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게침흘리며 먹었던 참게탕 생각이 나서 제철에 먹기 좋은 다른 탕맛을 보려고 벌교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막바지 알멩이가 영글어가는 벼이삭에 눈을 빼앗기다가 휙 하고 지나가는 간판 하나를 보았다. 형설서점. 농가와 논밭이 늘어선 도로변에 서점이라니, 그것도 목적한 바 있을 듯한 옛스런 상호가 수상쩍었다. 학교앞도 아니고 번화가도 아닌 곳에 형설지공에 삘 받은 듯한 간판이라... 가게는 보이지 않고 지나다 툭 박아놓은 것 같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도 재밌다.


차를 돌려 간판 옆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갔다. 무슨 관공서 같은데? 하고 둘러보니, 폐교다. 네 팀이 각각 두 경기씩을 뛰어도 좋을 축구장 두 배 만한 운동장에 건물은 두 동이니 아마도 학생수 적은 분교였나보다. 교실이 이어진 건물은 방마다 책들이 그득그득 쌓여있고 선생님들의 공간인 다른 건물은 주인내외의 살림집 같았다.

마침 찾으려는 책이 있어서 물어보니 누구나 싹쓸이해갔단다. 전화번호를 남겨두고 책구경에 나섰다. 보물과 쓰레기가 차고넘치는 중고서점은 내겐 짜릿한 신천지다. 넉넉히 왔다면 한나절도 놀겠는데 당일치기의 아쉬움. 써글.


무뚝뚝한 아저씨가 운동장에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배웅해줬다. 폐교를 사들여서 고서점을 운영할 배포와 꾀라면 조금 더 의욕적으로 가꿔서 동네의 랜드마크로 삼아도 좋겠던데. 가을볕을 따라 다녀온 순천 속 오래되고 부조화한 풍경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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