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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Nov 08. 2018

아이 니드 마이 스페이스

you were never really here 란 영화가 있더라.

2017 칸 영화제 각본상은 축하한다마는, 영화기자 시절 헐랭이로 보내서인지 유수의 영화제에 별 흥미가 없다.

감독의 무게감이나 배우의 선호도를 챙겨가며 보는 편도 아니라서 어쩌다 얻어걸린 셈인데-

기대 밖의 잔상이 컸다.


 

천부적인 살인청부업자 조는 정작 매순간 스스로를 죽이지못해 안달하는 자살충동자이기도 하다. 매춘굴에 흘러들어간 십대소녀를 구해오라는 비교적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업영화의 공식대로 당연히) 일이 꼬인다. 죽지도 죽이지도 못한 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기질을 내던지고 사건에 깊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


영화를 보는 나를 들여다보면, 의외의 순간을 기다리는 내가 있다. 영화를 허겁지겁 따라가는, 몰이해한 순간들은 대개 이 때문이다. 나는 조금 전 스쳐간 어떤 시퀀스를 잊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상기한다. 그리고는 혼자 저장한다. 이 영화에선 조와 엄마의 시퀀스.


한편 아들래미로써 조는 엄마에게 단 하나의 완벽한 세계다. 밤늦게 탄피와 피냄새 범벅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위해 어떻게 웃게 해줄까 고민하고, 시시콜콜한 어리광과 잔소리로 동구밖으로 나가있는 아들의 정신세계를 일상으로 끌어다놓는다. 집밖으로는 혼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할 늙은이에 하루종일 티브이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게 전부인 피붙이인데 엄마는 행복해보인다. 불행한 건 조다.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스스로 죽을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어느 일 없는 날 아침, 침대에 누워 잘 벼린 칼로 목구멍을 쑤시는 연습을 하는 조를 엄마가 또 부른다.  

내 칫솔 어딨니? 응? 내 칫솔 어딨니 조?!

조는 욕실을 향해 샤우팅-. 세면대 뒤에 있을 거에요.

엄마는 못찾겠다고 고함을 치면서도 문을 열고 들어가 찾아주려는 조를 한사코 막는다. 하지만 아들은 어둠의 세계를 누벼온 코뿔소같은 남자다. 손대면 톡 하고 욕실문이 열리고 습기가 자욱한 욕실에서 엄마는 칫솔 찾느라 진이 빠진 얼굴로 이렇게 불평한다. 들어오지 말래두. 내게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아이 니드 마이 플레이스!


아들은 당장이라도 죽고 싶은데 엄마는 하루를 꽉 채워서 윤을 내면서 살고 있다. 내 공간을 갖고 싶은 소망을 갖고 온전한 인생을 꾸려간다. 생에의 집착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내 몫을 쓰고 죽겠다는 담담한 권리주장이다. 하지만 아들 입장에선 이런 엄마가 먹먹하다. 엄마 나 언제 죽을지 몰라요 소리가 목구멍에 치받는 걸 꾹 누르면서 바닥의 비누거품을 섬세하게 닦는 죽어도 혼자는 못 죽을 반백의 아들. 


이 광경이 내내 나를 붙들었다. 좋았다. 이 엄마와 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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