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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Nov 18. 2018

쌍산재에서 운조루까지_구례여행

잘못 들어선 카페 겸 민박집에서 작은 천국을 만났다.

멈칫.

요 좁은 공간에 저토록 의미심장한 꽃송이가 절로 떨어질리 없다. 누군가 이 찻집 입구에 몇 송이 뿌려놓았을 건데, 그럼 또 어때.

오가는 사람 한 번 더 웃으라고 여우같이 꽃 부려놓은 모양이 귀엽잖아.


 

쌍산재에서 만난 대나무숲.

사대부 고택에서 학동들이 서당으로 가는 길목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대나무들. 그 옛날 그 시절에도 너희들은 학동들의 답답하고 은밀한 사연들을 실어 나르고 그랬니? 2018 대한민국 사람들 사이엔 수백개의 말못할 대나무숲이 있단다.


언뜻 보면 휘어진 것 같은데 가만 보면 휘어지지 않고, 나기를 휘게 나서 자라기는 곧게 자란다.

대나무, 이녀석! 무섭게 곧구나!


 

쌍산재 끄트머리에서 작은 문을 열면 나오는 영벽문. 그림자 영, 푸를 벽, 문 문.

문 열면 푸른 빛을 만나게 된다는, 말하자면 아침저녁으로 어스름하고 습하고 어둑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는 거겠지.

그 영벽문을 열면 장관의 호수가 펼쳐진다. 평야로 이뤄진 이 지역에 어떻게해서 이런 호수가 형성됐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만 정유경작가의 '7년의 밤'이 떠올라버렸다. 영화는 보지 못했고 책을 읽으며 나 혼자 그려본 깊고 음습한 저수지의 형태 고대로다.

기자시절 정 작가를 인터뷰했던 적이 있는데 막상 책의 얼개를 쌍산재에서 구상했단 얘기를 듣진 못했으니 나만의 망상이려니. 아 근데 너무 흡사해서 두고두고 깜놀.




영업집이니 전화번호 가리지 않아도 되겠지.

잘 데를 미리 찾아두지 못해 헤매다가 운조루의 여러 한옥민박 중 한곳에 들어섰다. 오지랖 넓은 주인여자가 나오더니 자기네 민박은 풀 부킹이니, 옆 민박에서 자란다. 성큼 옆 민박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더니, 주인 언니(이곳 사장님)가 쓰는 방이라 싸게 내주겠단다. 난방을 켜고 주의사항을 간단하게 일러준다. 흥정도 익숙하게 본인이 한다. 예산을 밑도는 가격이다. 머물기로 하고, 돈은 오지랖 여인에게 건냈다.

늦은 밤, 저간의 사정을 오지랖 여인에게 들은 게 뻔한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저 안부전화다. 잘 자고 내일 잘 나가란다. 주인 얼굴 한번 못 보고 홀린 듯이 자고 나왔다.


무인텔이 별거냐. 이게 바로 무인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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