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로펌
로펌에서 일하다보면 상대하는 기업 규모가 크다보니 나도 덩달아 커진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다니던 로펌의 송무파트 책임자였던 K변호사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변호사들이 일반 직장인들보다 급여 수준이 높으니 로펌이라는 조직이 꽤 잘 나가 보이지? 근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매출 100억이 로펌 업계에서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통하는 거 알지? 고위공직자들이 퇴직하고 나올 때 취업제한으로 걸어두는 기준이 1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로펌이잖아? 즉 년 100억 정도 매출이면 규모 있게 보는거야.’
‘근데 년 매출 100억은 절대 큰 규모 아냐. KOSPI나 KOSDAQ기준으로 보면 완전 구멍가게 수준도 안 돼. 아예 상장도 못할 수준일걸. 우리가 알고 있는 아무 기업이나 한번 찾아봐. 보통 연 매출이 조단위, 적어도 몇 천억 단위야. 규모로 봤을 때 로펌의 규모는 자본시장에서 명함도 못 내밀어.’
‘일반 기업들은 자산이라도 많잖아. 로펌은 자산이라고 해봐야 변호사들이지. 그런데 그 변호사들이 평생 한 로펌에 있나? 조건 안 맞으면 딴 곳으로 후루룩 떠나버리는 일이 다반사지. 그리고 로펌 수입의 대부분은 인건비로 다 지출돼. 로펌은 기업처럼 유보금이 많지도 않아. 그렇다고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과장되게 말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바닥이 이 바닥이야. 안정적이고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아. 의뢰인들이 계속 우리만 찾으라는 법 없고.’
사실 K변호사는, 당시 로펌의 집행부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월급 올려주세요! 복지 더 챙겨주세요!’라고 말하는 주니어 변호사들에게 실상을 알리려는 목적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곱씹을수록 옳은 말이긴 하다.
주식회사가 아니기에 자본을 끌어올 수도 없고, 수익의 대부분은 인건비로 다 나가기에 수익률이 높지도 않고, 고정자산을 많이 보유한 것도 아니고, 유보금을 많이 남겨두지도 못하고. 그래서 로펌 중 화려한 겉면(대리석 장식)과는 달리 속빈 강정인 경우가 꽤 있다. 이는 내부 사람들만 알고 있는 정보.
특히 대형 로펌을 나와서 나처럼 작은 부띠크 펌을 운영하다보면 K선배의 말이 더 실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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