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실험실](1) 권위라는 이름의 칼날 - 밀그램이 드러낸 인간의 민낯
#1 권위라는 이름의 칼날
권위는 칼이다. 보이지 않는 칼날로 인간의 양심을 가른다. 1961년 예일대학교 지하 실험실에서 벌어진 한 장면을 상상해보라. 형광등이 깜박이는 차가운 공간에서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손목에는 전극이 붙어 있고, 앞에는 전기충격 장치가 놓여 있다. 15볼트부터 450볼트까지의 스위치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당신이 그 스위치를 눌러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2 실험실의 진실
스탠리 밀그램이 설계한 이 실험은 단순했다. 40명의 참가자들은 '학습 효과 연구'에 참여한다고 믿었다. 실험자가 하얀 가운을 입고 나타난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권위적이다. "당신은 선생님 역할을 맡으셔야 합니다. 학습자가 틀린 답을 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해주십시오."
학습자는 다른 방에 앉아 있다. 보이지 않는다. 오직 소리만 들린다. 처음엔 조용하다. 75볼트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150볼트에서 "그만해 주세요!"라는 외침이 들린다. 참가자들이 주춤한다. 손이 떨린다. 이때 실험자가 말한다. "실험을 위해 당신이 계속해야 합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330볼트에서 학습자의 비명이 끊어진다. 침묵이 흐른다. 그럼에도 65%의 참가자들이 끝까지 간다. 450볼트. 치명적인 수준의 전압이다. /그들은 양심의 고통 속에서도 스위치를 눌렀다./
#3 복종의 심연
그러나 이 실험이 우리에게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상황의 포로가 되기 쉬운지에 대한 경고이며, 동시에 우리 각자가 지닌 도덕적 자율성이 얼마나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다. 참가자들은 사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아버지이고, 교사이고,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권위라는 상황 앞에서 그들의 도덕적 나침반은 흔들렸다.
밀그램은 이를 '대리 상태(agentic state)'라고 불렀다. 개인이 자신을 더 큰 권위 체계의 일부로 인식할 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이 권위자에게 이전된다는 것이다. /마치 톱니바퀴가 기계의 일부가 되어 전체의 목적에 복종하듯, 인간도 권위 구조 안에서 자신의 판단력을 포기하게 된다는 통찰이었다./
#4 현실 속의 메아리
오늘날 이 실험의 메아리는 도처에서 들린다. 조직 내에서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상사의 말이 양심에 어긋날 때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가? 집단 따돌림을 목격하면서도 침묵하지 않는가? 권위에 대한 복종은 현대 사회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더 무서운 것은 디지털 시대의 익명성이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더욱 쉽게 권위에 복종한다. 좋아요 수와 팔로워 수가 새로운 권위가 되었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정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밀그램의 전기충격 장치가 스마트폰 속 터치스크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5 실험의 그림자
물론 이 실험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4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 밀그램은 이후 미국 정신분석학회로부터 1년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고, 하버드에서 교수직을 얻지 못했다. 또한 1960년대 미국의 특정 문화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실험이기에, 모든 문화와 시대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후의 다양한 후속 연구들이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향성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6 자유의지라는 질문
결국 밀그램의 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인가? 아니면 상황과 권위의 노예인가? 실험실에서 스위치를 누른 사람들을 단순히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권위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서는 것이다./ 내가 지금 누르려는 스위치가 정말 눌러야 할 스위치인지 묻는 것이다. /상황의 힘이 강할수록, 권위의 목소리가 클수록 더욱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로 양심의 목소리에 말이다./
인간의 존재는 언제나 권위와 자유 의지 사이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밀그램의 실험은 그 긴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긴장을 견디며 살아갈 용기다.
<작성 : 조우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