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만에 파시스트가 된 아이들

by 조우성 변호사

[마음의 실험실](3) 닷새 만에 파시스트가 된 아이들

#1 달콤한 규율의 유혹


규율은 달콤하다. 1967년 4월, 팰로 알토 큐벌리 고등학교 교실. 론 존스 교사가 칠판에 '규율을 통한 힘'이라고 쓴다. 학생들이 고개를 든다. 호기심이 번진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닷새 뒤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를.


그날 존스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앉는 자세를 가르쳤다. 등을 곧게 세우고 발을 바닥에 붙인 채 손을 등 뒤로 모으는 자세. 학생들은 신기해했다. 몸이 한결 곧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존스가 손뼉을 치면 모두가 일제히 그 자세를 취했다. 완벽한 침묵. 완벽한 통일감.


#2 제3의 물결이 몰려온다


이튿날, 존스는 '제3의 물결'이라는 운동을 선언했다. 파도 중에서도 세 번째 파도가 가장 강하다는 서퍼들의 속설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특별한 인사법이 생겼다. 오른팔을 가슴팍에서 앞으로 뻗으며 손목을 구부리는 동작. 파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그 인사를 나눴다. /소속감이 피어났다. 우리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자랐다./


사흘째, 넷째 되던 날, 변화는 가속화됐다. 30명에서 시작된 운동은 2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다른 반 학생들까지 찾아와 가입을 요청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제3의 물결 배지를 만들어 달고 다녔다.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학생들을 색출해 신고했다. 규율을 어기는 동료를 감시했다. 교실은 하나의 유기체가 됐다.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만 남았다./


하지만 소수의 저항도 있었다. 셰리 툴지 같은 학생은 아버지와 함께 몰래 반(反)제3의 물결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도 깨뜨리는 자들(The Breakers)'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포스터들은 수업 시작 한 시간 만에 모두 사라졌다.


#3 실험의 충격적 진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닷새째 되던 날이었다. 존스가 진실을 고백했을 때 학생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수치심이 교차했다. 그들은 파시즘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험한 것이었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섬뜩하다. 과연 인간은 자유로운 개체인가, 아니면 집단의 논리에 쉽게 함몰되는 존재인가. 제3의 물결은 단 닷새 만에 평범한 학생들을 열광적 추종자로, 비판적 사고를 하던 젊은이들을 맹목적 신도로 변화시켰다. 그들에게는 총칼도, 협박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소속감과 우월감, 그리고 질서라는 달콤한 마약만 있었을 뿐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아이러니는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안정감이다./ 규율은 사고의 부담을 덜어준다. 선택의 고통을 제거해준다. 개인의 책임을 집단에 위임할 수 있게 해준다. 존스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보인 열광적 반응은 바로 이런 해방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그들은 너무나 쉽게 무릎을 꿇었다.


#4 오늘날 우리의 모습


그런데 이런 현상이 과연 1967년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디지털 공간의 집단 광기를 보라. 해시태그 하나로 뭉치고 흩어지는 군중들. 같은 프로필 사진을 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네티즌들.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고 일방적 규탄에 나서는 온라인 집단들.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제3의 물결의 그림자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사회의 각종 조직과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강압적 조직문화, 정치 집단의 맹목적 충성, 종교나 이념 공동체의 획일화 압력. 이 모든 것들이 제3의 물결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집단의 논리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5 실험의 한계와 교훈


물론 이 실험에는 한계가 있다. 짧은 기간의 인위적 환경에서 일어난 현상을 전체 인류의 보편적 속성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한 15세의 고등학생이라는 특수한 발달 단계의 심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역사 속 파시즘은 훨씬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의 산물이었다. 실험을 주도한 존스 교사 역시 2년 후 반전 활동을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당하며 학교를 떠나야 했던 것도 당시 상황이 단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3의 물결이 보여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모두 제3의 물결에 휩쓸릴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소속에 대한 갈망, 확실성에 대한 열망, 책임 회피에 대한 유혹이 우리 내면에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존스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마지막에 전한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민주주의란 끊임없는 경계와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지키려는 의지 사이의 긴장,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결국 인간이란 천사도 악마도 아닌, 그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다. 제3의 물결은 우리에게 이런 진실을 일깨워준다. /우리 안에는 파시즘의 씨앗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이성의 힘도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작성 :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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