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별은 하루 만에 만들어진다.
1968년 4월 5일, 아이오와 주 리스빌의 한 초등학교 교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을 애도하던 28명의 3학년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묻는다. "흑인들은 왜 차별받나요?" 제인 엘리엇 교사가 답한다. "내일 알게 될 거야." 그녀의 눈에 결연함이 서린다.
#2 15분 만에 변화한 아이들
다음 날 아침, 교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엘리엇 교사가 아이들 앞에 선다. "오늘부터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특별한 권리를 갖게 됩니다." 갈색 눈 아이들은 갑자기 우월해진다. 그들은 앞자리에 앉고, 더 긴 쉬는 시간을 갖는다. 파란 눈 아이들은 목에 칼라를 둘러야 한다. 열등함의 표식이다.
변화는 즉시 일어난다. 갈색 눈 아이들이 파란 눈 친구들을 밀어낸다. "너희들은 바보야." "우리가 더 똑똑해." 어제까지 함께 놀던 친구들이 적이 된다. 파란 눈 아이들은 위축된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어깨가 움츠러든다. 학습 능력마저 떨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을 부여받는 순간, 그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본능적 욕구에 사로잡힌다./
둘째 날, 엘리엇 교사가 역할을 바꾼다. "어제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사실 파란 눈이 더 우월합니다." 이제 파란 눈 아이들이 권력을 갖는다. 그들 역시 어제의 갈색 눈 아이들처럼 행동한다. 억압하고 무시한다. 권력의 맛을 본 순간,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3 차별의 해부학
실험이 끝났을 때 아이들은 서로 끌어안고 운다. 그들은 깨달았다. 차별이 얼마나 쉽게,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지는지를. 하루 만에 친구가 적이 되고, 평등했던 아이들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었다.
/차별이란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15분 만에 학습될 수 있는 사회적 행동이다./
그러나 이 실험이 우리에게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차별이란 것이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학습된 행동이라는 점이다. 엘리엇 교사가 만든 것은 인위적인 위계였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진짜였다. 우월함을 부여받은 순간 그들은 즉시 그 권력을 남용했고, 열등함을 강요당한 아이들은 실제로 위축되고 무기력해졌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상황의 포로가 되기 쉬운지,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 개인의 정체성을 얼마나 강력하게 규정하는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증거다.
#4 현대 사회의 거울
현대 사회를 보라.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파란 눈'과 '갈색 눈'으로 나뉘어 있다. 출신 학교, 직업, 재산, 외모, 나이 등 무수한 기준들이 인간을 우열로 가른다. 온라인 댓글창에서 벌어지는 혐오 표현들, 취업 과정에서의 학벌 차별, 일터에서의 성별 편견들. 이 모든 것이 1968년 그 교실에서 벌어진 일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는 모두 제도가 만든 차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 실험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서열 문화, 외모와 스펙으로 평가받는 개인들, 그리고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우리는 어느새 차별을 내재화하고 있다. 나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범주화하고 위계를 매기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망각하고 있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차별 속에서 우리는 매일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된다./
#5 실험의 한계와 성찰
물론 이 실험에도 한계가 있다. 인위적인 실험 환경이 현실의 복잡성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으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윤리적 문제도 제기된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이 실험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차별과 편견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것인가?
결국 엘리엇 교사의 실험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은 의심하는 능력이다. 기존의 질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상상력.
/진정한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작성 : 조우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