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의 함정: 지록위마는 왜 통했는가

by 조우성 변호사

조고의 함정: 지록위마는 왜 통했는가


사슴을 말이라 부르는 사람들


월요일 오전 9시, 전략기획실 회의실.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김 상무가 새로 추진할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름은 ‘Z 프로젝트’. 누구도 그 실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장 분석 데이터는 빈약했다. 예상 수익 모델은 허술했다. 모두가 실패를 직감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김 상무의 시선이 박 부장에게 멎었다. 그는 상무의 사람이었다. 박 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말 탁월한 구상입니다. Z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칭송이 이어졌다. 몇몇 팀장이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동의는 프로젝트의 타당성이 아니라, 김 상무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조직의 논리는 진실의 논리가 아니다. 비합리적 결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모두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침묵은 동의가 되고, 동의는 거대한 착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당신은 그 회의실에 앉아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당신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권력이라는 이름의 필터


이 상황의 본질은 업무적 합리성에 대한 토론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실험이다. 본질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리더의 의도가 시험대가 되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제안은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나의 제안에 반대하는 자와 찬성하는 자를 가려낸다. 진실을 말하는 자와 내 편에 설 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것은 효율적인 분류법이다.


둘째, 침묵의 힘이다. 다수의 침묵은 소수의 아첨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침묵하는 자들은 암묵적 동조자다. 그들은 현상 유지를 원한다. 불이익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극적 태도가 권력의 폭주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다.


셋째, 공포의 전염이다. 한 명이 진실을 말했다가 좌천되는 것을 모두가 목격한다. 그 순간, 진실의 가치는 폭락한다. 생존의 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 상황은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자와 추종자, 그리고 방관자의 역학 관계일 뿐이다.


진나라의 마지막 실험


기원전 209년, 진나라의 승상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는 황제 호해와 군신들이 모인 자리에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왔다. 그리고 황제에게 당당히 말했다.


“폐하께 천리마를 바칩니다.” (獻馬于二世)
호해는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농담을 하는군. 이것은 사슴이 아닌가.” (此鹿也)
조고는 주위 신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러분, 이것이 말이오, 사슴이오?”

신하들의 반응은 세 갈래로 나뉘었다. 어떤 이는 침묵했다. 어떤 이는 조고의 눈치를 보며 말이라고 답했다. 몇몇 강직한 신하들은 사슴이라고 말했다. 실험은 끝났다. 조고는 이후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모두 법으로 엮어 죽였다. 조정에는 조고의 사람만 남았다. 진나라는 그렇게 무너졌다.


보이지 않는 충성 서약


조고는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가.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의 목적은 사슴을 말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말을 ‘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권력의 본질이다.


사마천은 『이사열전』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드러낸다. 권력은 사실을 규정하는 힘이다. 동양의 법가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일찍이 군주의 통치술(術)을 강조했다. 지록위마는 신하를 다루는 가장 극단적인 통치술의 발현이다. 상식과 이성을 파괴함으로써, 오직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만 남기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한 ‘두려움의 정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랑받는 군주보다 두려운 군주가 더 안정적이다. 조고의 실험은 모든 신하에게 공포를 심었다. ‘진실보다 조고가 더 무섭다’는 인식을 각인시킨 것이다. 오늘날 경영학에서 말하는 ‘조직 침묵(Organizational Silence)’ 현상의 원형이다. 직원들이 더 나은 대안을 알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입을 닫는 현상. 그 뿌리는 2,200년 전 조고의 궁정에 닿아있다.


현대의 조직에서도 ‘지록위마’는 매일 일어난다. ‘Z 프로젝트’가 바로 오늘의 사슴이다. 모두가 그것이 실패할 것임을 알지만, 상무의 권위 앞에서 그것은 ‘미래 먹거리’라는 이름의 말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당신은 사슴이라 외칠 것인가, 말이라 답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다만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뿐이다.


내일 실천할 3가지


권력의 시험대 앞에서 무작정 진실을 외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일 수 있다. 당신의 목표는 순교가 아니라 생존과 성취다. 그러므로 영리하게 대응해야 한다.


관찰하라: 권력의 지도를 그려라.
회의실에서 누가 가장 먼저 ‘말’이라고 말하는지, 누가 침묵하는지, 누가 미세하게 고개를 젓는지 10분간 관찰하라. 조직 내 파벌과 역학 관계가 보인다. 이것이 당신의 행동반경을 결정하는 지도다.


질문하라: 반박 대신 질문으로 의도를 파악하라.
“저것은 사슴입니다”라고 말하지 마라. 대신, “저 동물이 말이라고 판단하신 구체적인 기준이 궁금합니다”라고 질문하라. 질문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상황의 본질을 드러낸다.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스스로 드러나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다.


기록하라: ‘사슴-말’의 순간들을 기록하라.
어떤 안건이 ‘지록위마’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5분간 메모하라. 이 기록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조직의 의사결정 패턴을 분석하고, 당신이 언제 목소리를 내고 언제 침묵해야 할지 알려주는 당신만의 데이터베이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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