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함이라는 감옥, 맑음이라는 사막

by 조우성 변호사

[투명함이라는 감옥, 맑음이라는 사막]


『채근담』은 단언한다.

“水至清則無魚 人至察則無徒.”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하고,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닥의 모래알까지 훤히 보이는 물에는 어떤 생명도 깃들지 못한다.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물의 이치는 인간의 세상에서 더욱 서늘한 경고가 된다. 모든 것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 아래, 어떤 관계도 온전하게 머물 자리는 없다. 이것이 시간에 새겨진 지혜이다.


# 투명함이라는 신기루


우리는 투명성의 시대를 산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되고 알고리즘으로 분석되는 세상을 정답이라 믿는다. 조직은 ‘투명한 소통’을 외치고, 개인은 SNS에 제 삶의 단면을 전시하며 ‘진정성’을 증명하려 발버둥 친다. 그러나 투명함을 향한 이 집착적 갈망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투명함에 대한 맹신은 가장 눈부신 맹목이다./


모든 것이 환한 빛 아래 드러날 때, 그림자가 사라진 세계는 모든 깊이를 상실한다. 삶의 미묘한 결, 관계의 복잡한 함수, 말로 다 못 할 마음의 그늘은 데이터의 격자무늬 안에서 속절없이 증발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의 개막이다.


# 비평이라는 멸균의 칼날


지찰(至察, 지극히 살핌)은 칼날이 된다. 먼저 타인을 향한다. 우리는 타인의 작은 흠을 참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견디지 못하며, 완벽이라는 잣대로 상대를 끊임없이 난도질한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는 관계가 아닌 해부를 지향할 뿐이다./

살아 숨 쉬는 인간을 차가운 분석 대상으로 만드는 그 시선 앞에서 모든 온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칼날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고 성과를 숫자로 재며, 이상적 자아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세운다. 최적화와 효율의 이름 아래, 우리는 스스로의 불완전함과 인간적인 나약함을 제거해야 할 버그로 여긴다.

/스스로를 향해 휘두르는 비평의 칼날이야말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는 법이다./

그 칼날은 분명 영혼을 산산조각 내어 생기 없는 파편으로 만든다.


# 흐린 공존의 지혜


생명은 결코 맑은 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부유물이 떠다니고 수초가 엉키며 빛이 닿지 않는 심연이 있는 혼탁한 물속에서만, 물고기는 알을 낳고 적을 피해 몸을 숨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오해와 침묵, 설명되지 않는 모순과 때로는 의도적인 외면이 뒤섞인 ‘흐린’ 영역이 있어야 관계는 비로소 숨을 쉰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교만을 내려놓고, 타인의 불가해성을 기꺼이 존중할 때 공존은 시작된다. 완벽한 이해 대신 불완전한 공존을 선택하는 용기. /삶의 위대함은 정답이 아닌 여백 속에서 발효된다./

지극한 맑음의 끝은,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절대 고독이다.


스스로의 모순을 끌어안고 타인의 그림자를 보듬으며, 기꺼이 탁한 세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패배가 아닌 성숙이다. /결국 우리는 맑은 고독 대신, 흐린 공존을 택해야 하는 운명이다./ 바로 그 혼탁함 속에서야, 우리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연약한 생명이 된다.


* 요약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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