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의 시대라도 뭘 알아야 융합능력이 생깁니다."
이원복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는 말이다. 요즘처럼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아니 오히려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 중요한 지적이 아닐까.
샐러드 지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저것 섞어 놓았다는 뜻이다.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양상추는 양상추대로 그냥 한 그릇에 담겨 있을 뿐. 그런데 진짜 융합 지식은 그게 아니다. / 화학반응이 일어나서 전혀 다른 뭔가가 되는 것. 물과 수소가 만나면 물이 되듯이 말이다. /
MIT에서 융합 연구를 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T자형 인재'다. T자를 생각해보면, 세로줄은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든 전문성이고, 위의 가로줄은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폭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순서다. / 먼저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폭은 그 다음이다. /
3M이라는 회사가 자기네 혁신 사례들을 분석해봤더니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여러 분야를 잘 엮어내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니, 이들은 처음부터 넓게 공부한 게 아니었다. 먼저 한 분야에서 깊은 전문성을 쌓고, 그 다음에 자기 영역이 다른 분야들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이해하면서 범위를 넓혀갔다. 깊이가 먼저였고, 그 깊이가 폭을 가능하게 했다.
반대로는 안 된다. 여러 분야를 얕게 알면? 그건 그냥 얕은 지식 여러 개일 뿐이다. 융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 융합이라는 건 지식들의 '접점'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접점을 보려면 각 분야의 안쪽까지 들어가 봐야 하니까. /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이걸 실감한다. 법만 알아서는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의료사고 소송을 하려면 의학을 알아야 하고, 건축분쟁을 다루려면 공학을 알아야 하고, 특허소송을 하려면 기술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각 분야를 대충 아는 걸로는 소용없다. 법을 제대로 알아야 다른 지식을 법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
이게 단순히 여러 전문가를 모아놓는 것과 융합의 차이다. 전문가들을 모으면 각자 자기 영역에서 의견을 낸다. 그걸 누군가 취합해야 한다. 융합은 다르다. 한 사람 안에서 지식들이 서로 부딪히고 섞이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 그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촉매가 바로 깊이다.
깊이 없는 넓이는 겉핥기다. 넓이 없는 깊이는 우물 안 개구리다. 둘 다 필요하지만 순서가 있다. 깊이가 먼저고, 넓이는 그 위에 쌓이는 것이다.
잡학의 시대다. 정보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정보를 아는 것과 지식을 갖춘 것은 다르다. 지식을 갖춘 것과 그걸 융합해내는 것은 또 다르다.
/ 진짜 융합을 원한다면? 먼저 한 분야를 제대로 파라. 그 깊이가 나중에 다른 지식들과 이어지는 다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