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우리 회사는 A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사에서 이상한 요구를 합니다. 계약서에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우리 회사가 매출자료를 정기적으로 A사에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는 겁니다. 계약 협상 때 그 부분에 대해 합의를 봤다는 거예요.
우리 실무 책임자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긴 한데,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니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어떤 내용에 대해 실무책임자 간에 합의가 되었고, 그 합의사항이 입증될 수 있다면 그 내용은 계약의 내용이 되어 당사자를 구속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아도 되죠? 계약서에 적혀 있는 내용만 책임지는 것이 맞죠?”라는 질문을 흔히 듣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아두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민법에는 ‘낙성계약(諾成契約)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굳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계약 쌍방의 ‘의사표시의 합치’만으로 계약은 성립한다고 본다는 원칙입니다. 따라서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더라도 계약 협상 중에 특정한 사항에 대해 서로 충분히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를 구속하게 됩니다.
사실 계약서를 아무리 세밀하게 작성한다 하더라도 협상의 결과물 100%를 모두 계약서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서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더러 빠뜨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처럼, ‘이미 합의는 되었는데 계약서로 옮기는 과정에서 빠뜨린 부분’도 계약의 내용으로 본다는 것이 ‘낙성계약의 원칙’입니다.
다만 문제는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표시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오리발을 내밀게 됩니다.즉 어떤 합의를 했다 하더라도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우린,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합의를 했다면 계약서에 당연히 표시를 했을 테죠.”라면서 합의한 내용을 부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오리발을 내미는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회의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적은 ‘내부보고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를 들어 C사와 D사가 계약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특정 사안에 대해 합의를 했고, C사 담당 직원은 그 합의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기재해서 내부적으로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양사가 체결한 계약서에는 그 합의 내용이 누락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계약서에는 누락되었지만 당사자끼리는 합의된 그 부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합의 내용이 인정되면 불리해지는 D사는 당연히 그런 합의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계약서에도 그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러자 C사는 계약서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당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내부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과연 법원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물론 C사의 보고서가 C사 내부문건이긴 하지만 그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라면 법원은 C사의 주장을 믿어 줄 가능성이 큽니다. D사로서는 계속 “그런 합의가 없었습니다!”라고 주장할 테지만 C사의 보고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면 판사로서는 D사가 궁색한 핑계를 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 협상을 할 때에는 중간 중간 합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해서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는 회의를 시작한 시간과 마친 시간, 회의 장소,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을 자세하게 적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이처럼 말로 약속한 것도 나중에 상대방이 그 사정을 잘 입증하게 되면 약속을 지켜야 하며,만약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계약불이행’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현업 담당자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너무 핑크빛 약속을 많이 남발하면 안됩니다.
▷ 계약협상 중에 책임지기 어려운 약속을 남발하는 것은 나중에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할 것.
▷ 계약협상 진행 중에는 반드시 사무실에 복귀하여 그 날 있었던 내용들을 보고서 형태로 남겨두는 것이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