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 저, '궁극의 시학'

by 김준식


안대회 궁극의 시학

(사공도 24시 품)


詩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詩의 뜻은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감흥이란 또 무엇인가? 감흥이란 마음속 깊이 감동받아 일어나는 흥취라고 되어 있는데 흥과 취미가 합해진 흥취를 느끼는 것이 감흥이라고 했다.


따라서 결국 詩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재미나 즐거움(대상의 유무와 관계없이)을 律, 즉 정해진 방식대로 압축해서 옮겨 놓은 글을 말하는데 아무나 詩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흥은 누구나 느끼지만 그 흥을 법칙에 맞춰 글로 옮기는 것은 대단한 훈련과 지식, 그리고 창의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 있어온 漢詩는 그 법칙이 매우 엄격하여 누구나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인간의 '흥'과 '취'를 넘는 내면의 풍경과 심지어 득도의 경지까지도 담아내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매우 높은 경지의 것들이었다.


이렇듯 漢詩는 그 옛날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 아시아 한자 문화권에 있었던 나라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흥취를 알 수 있음과 동시에 그 사회의 여러 풍경을 감지할 수 있는 단순한 풍경 묘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그 시절 교양과 문화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이런 漢詩(이하 詩)는 그 시대 출세의 유일한 길이었고(과거의 중요한 과목 중 하나가 詩다.) 그 사람의 지식의 깊이와 미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 방법이 詩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제가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된다.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운 것은 모두 詩다.”


사람들이 우주와 인간, 그리고 사회의 여러 가지 풍경들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곧 詩로서 표현하는 것이었으므로 박제가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詩는 다른 예술의 많은 동기를 제공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사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즉 漢詩를 통해 품은 풍경을 그림으로 묘사하고 또 그 묘사된 그림 위에 詩적 정서를 가미한 서예를 더함으로써 미학적으로 완성된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시적인 풍경과 묘사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고 또 분류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저작이 사공도의 24 시품이다. 사공도는 중국 당나라 말기 사람이다. 시인으로서 명성도 드높았지만 그가 지은 24시 품은 당시까지 전해오는 시에 대한 해석과 논점을 그의 방식대로 분류한 특별한 詩作이자 후대에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한시의 표석이 될 만한 것이었다.


그 특징은 묘사가 회화적이고 의미가 풍부하며 독자의 연상과 상상을 계발해서 구체적 형상을 넘어서 우리 모두를 관대한 예술적 공간으로 인도하고 있다.


24시 품이란 시의 의경을 24품으로 나누어 각 품을 12구 48자의 운문으로 묘사하여 詩로서 詩를 드러내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의경이란 본래 ‘요의경’이라는 불교용어였는데 작자의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이 객관적인 사물이나 대상을 만나 융합하면서 생성되는 의미 또는 형상을 말함이다. 24시 품은 시 속에 나타난 이러한 의미와 형상을 물질적 혹은 정신적 창조물에서 보이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모습 24개로 묘사하고 있다.


사공 도의 24시 품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품이라는 말과 풍격이라는 말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첫 번째 풍격_ 웅혼(雄渾) 영웅의 느낌.

두 번째 풍격_ 충담(沖淡) 담백의 미학.

세 번째 풍격_ 섬농(纖濃) 곱고 짙은 여인의 향기.

네 번째 풍격_ 침착(沈著) 비관적이고 내성적임.

다섯 번째 풍격_ 고고(高古) 높고 예스러움.

여섯 번째 풍격_ 전아(典雅) 우아한 풍류.

일곱 번째 풍격_ 세련(洗鍊) 정제되고 단단함.

여덟 번째 풍격_ 경건(勁健) 힘이 넘침.

아홉 번째 풍격_ 기려(綺麗) 화려한 삶의 모습.

열 번째 풍격_ 자연(自然) 섭리에 순응.

열한 번째 풍격_ 함축(含蓄) 말로 다 담지 못하는 세계.

열두 번째 풍격_ 호방(豪放) 原始의 담대함.

열세 번째 풍격_ 정신(精神) 사물의 핵심.

열네 번째 풍격_ 진밀(縝密) 치밀하고 촘촘함.

열다섯 번째 풍격_ 소야(疏野) 정제되지 못한 아름다움.

열여섯 번째 풍격_ 청기(淸奇) 맑고 기이함.

열일곱 번째 풍격_ 위곡(委曲) 파란과 곡절.

열여덟 번째 풍격_ 실경(實境) 보이는 순간의 아름다움.

열아홉 번째 풍격_ 비개(悲慨) 파토스(페이소스).

스무 번째 풍격_ 형용(形容) 정확한 묘사.

스물한 번째 풍격_ 초예(超詣) 초월을 노래함.

스물두 번째 풍격_ 표일(飄逸) 표연히 날아 오름.

스물세 번째 풍격_ 광달(曠達) 텅 비어 트여있음.

스물네 번째 풍격_ 유동(流動) 흘러 움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