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한 이들

피나코테크의 그림들 6

by 김준식
Der verlorene Sohn(방탕한 이들), oil on canvas Alte Pinakothek 1623

교외의 허름한 유곽에서 세 쌍의 남녀와 한 명의 노파가 모여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다. 아마도 노파는 이 술집의 주인일 것이고 나머지 젊은 여자들은 술집에 종업원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화면에 대각선으로 누워있는 남자의 옷이 등불에 푸르게 비치고 있다. 그 남자의 종아리에는 매듭이 묶여 있는데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군인들 복장이 이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남자들의 모자들도 예사롭지 않다. 근위병들이 쓰는 깃털 모자에 가깝다. 아마도 근무를 마친 군인들이 근처 술집에서 아가씨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헤리트 반 혼트 호르스트(Gerrit van Honthorst 1592~1656)는 네덜란드의 화가로 유트레히트 화파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유트레히트 화파란 17세기 초,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를 중심으로 활약한 일군의 화가들을 말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교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가톨릭을 신봉했고 동시에 어김없이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아 이들을 카라바제스키라고 부른다. 혼트 호르스트는 그 카라바제스키 중 거의 최초의 인물이다. 그도 이탈리아에서 10년간 유학을 다녀왔고 그의 모든 작품에서 카라바조의 영향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그림 대부분은 빛이 화면의 지배한다. 그의 주요한 작품은 성화들인데 이 그림처럼 풍속화도 여러 점 남아있다.


이 그림에도 카라바조의 절대적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 빛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다. 거의 화면의 중앙에 있는 큰 촛불과 그 촛불을 가리고 있는 남자의 술잔이 방 전체를 환하게 비추지만 그 광선은 확산성이 높지는 않다. 사람들 모습 외에는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카라바조의 영향이다. 카라바조의 “성 마테를 부르심”에서처럼 빛은 화면에 한 줄기 빛을 제공할 뿐 화면 전체에 빛은 퍼지지 않는다. 바로 카라바조의 빛으로 불리는 그 광선이다.


혼트 호르스트 이후 유트레히트 화파는 귀족적 경향으로 그림 전체가 딱딱해지는 경향도 있었으나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그림과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화면의 구성과 매우 세밀한 묘사 등이 가미되어 이후 렘브란트로 융성해지는 네덜란드 국민 회화의 형성에 이바지한다.


빛에 의해 두드러지는 인물의 부분과 빛에 의해 사라져 버린 배경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조화롭게 구성된 이 그림은 가톨릭의 성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없고 남녀의 자세가 매우 자유로운 모습으로 묘사되어져 있는데 이는 당시의 분위기로 볼 때 거의 혁명적 그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초엽, 아직은 중세의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그 무렵 성스러운 성화 대신에 민중의 삶에 눈을 돌려 이 그림을 그린 혼트 호르스트의 용기에 가까운 독창성은 이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