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乎材與不材之間*(처호재여부재지간) 쓸모없음과 있음 사이에 머묾.
康德要別驗理境 (강덕요별험이경) 칸트는 기어코 경험과 이성을 나누려 했지만,
淡乎無辨諸希言*(담호무변제희언) 모든 도는 담백하여 어떤 구분도 없음이라.
此分果無所可用 (차분과무소가용) 이런저런 나눔이 마침내 무슨 소용이겠는가,
諸聰及獨得幽遠*(제총급독득유원) 수많은 현자들, 홀로 아득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2023년 3월 30일 오전. 3월에만 10편째 시를 쓴다. 사흘에 한 편씩 쓴 셈이다. 생각이 많아서 일 것인데 정제와 압축이 필요하다. 중학교 철학 2권을 쓰며 드디어 칸트에 이르렀다. 거대한 높이에 절망하고 아득한 계곡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중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니 더욱 난감해진다. 하지만 해 왔던 것처럼 모든 인간이 가진 근원적 오성悟性에 기대어 이야기하다 보면 그렇게 절망적인 길을 아니다.
중국인들의 오만함은 모든 서양 사람들 이름을 음차 하여 쓴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그들의 속 좁음을 본다. 임마누엘 칸트를 중국인들은 ‘이만노이강덕伊曼努尔康德’이라고 쓴다.
칸트의 관념론을 내 입으로 잘 녹여 아이들에게 설명하려 하는데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참 의미 있는 일이다.
* 『장자』 ‘산목山木’
* 『도덕경』 23장 ‘희언자연希言自然‘
* 독득현문獨得玄門: 중국의 오대(5대 10국 시대- 당 멸망 후 송나라 건국까지 약 50년 정도의 혼란 시기)시대 후량의 화가였던 형호荊浩의 회화 창작이론서인 『산수수필법』(줄여서 산수록, 또는 필법기)에 있는 말이다. 노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여러가지 회화의 도를 이야기하는데 그 중 하나가 ‘독득현문’으로서 그 뜻은 ‘홀로 현묘한 경지를 터득함’이다. 운을 맞추기 위해 ‘독득유원’이라고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