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생각해 보니……
작은 학교 교장의 역할이 이제 50여 일 남았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지속적으로 작은 학교 문제를 고민하였고 다양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얻은 결과는 미미하거나 혹은 전무하다. 하지만 내 노력이 완전히 무위인 것은 아니다. 지수중학교는 이전보다 밝아졌으며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비교적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2020년 5월쯤, 교장이 된 지 한 학기가 지나고 온 나라에 코로나의 암운이 걸쳐지던 그즈음, 나는 우리 학교와 규모가 비슷한 경남 도내의 작은 학교(중학교)를 파악하고 그 학교 교장 선생님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작은 중학교 아이들의 통학을 해결할 수 있는 통학버스문제를 중심으로 교육환경 개선 문제(체육관 및 특별실 증, 개축) 등을 주요 의제로 하여 논의를 해 보자는 것이 나의 취지였다.
내 기억으로 약 20개 이상의 학교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으나 회신은 단 한 통도 없었다. 심지어 메일을 확인조차 하지 않은 학교가 반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좌절보다는 실망이 컸던 나는 자력갱생(?) 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단위 학교에 돈을 투자하려면 도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타당성도 합리성도 떨어지는 투자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마침내 2020년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는 외부적인 투입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학교 내부적인 문제로 방향을 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 해 오던 철학 수업을 좀 더 내실 있게 하고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학교 환경 개선에 집중하여 전체 복도 바닥을 밝은 색으로 교체하고 곳곳에 그림을 걸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에게는 단 한 번도 어떤 방향을 제시한 적은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선생님들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교육관이 존재하고 그것에 따라 교육활동을 하며 그것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원동력은 스스로의 판단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교장의 무, 유형의 압력이나 방향제시는 선생님들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나의 태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2021년부터 학교 분위기가 달라짐은 물론 수업의 다양화와 교사 모임에서 제안된 창의적인 체험 프로그램이 나의 노력(도 교육청에서 시행한 각종 공모 사업에 응모하는 일은 내가 도맡아 했다. 각종 문서 작업은 물론이고 어떤 프로그램은 아이들 체험 인솔까지 내가 책임졌다.)과 연결되어 나와 선생님들이 비교적 만족할 만한 상황으로 학교 분위기는 크게 개선되었다. 2023년 지금도 그 분위기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결국 외부적 에너지(투자) 유입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에 활력을 불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나 방향은 구성원들의 노력일 수밖에 없다. 단 그 노력은 매우 자발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자율적이어야 한다. 학교라는 위계에서 교장이 가지는 몇 가지 권한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이를테면 부당한 외부적 간섭(도 교육청이나 지원청, 지역사회, 학부모 등)에 대한 교섭과 방어는 중요한 교장 고유의 권한으로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이 방어가 성공한다면 학교는 최소한 내부적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교사들이 신뢰하기까지는 학교장의 부단한 노력과 제법 긴 시간이 요구된다.
나는 거의 확신한다. 2학기에 오시는 새로운 공모 교장 선생님께서 현재의 우리 학교 분위기를 익혀 거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결합시킨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다.
걱정도 있다. 지수초등학교 6학년은 8명이다. 전원이 우리 학교로 진학하더라도 내년 학생 수는 줄어든다. 왜냐하면 지금 3학년 9명인데 졸업을 하면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진주시내 과밀학급의 아이들이 우리 학교로 올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아니 올 수도, 방법도 없다. 부모들은 작은 학교가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저하시킨다는 불행한 미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의 바람은 지수초등학교 아이들이 온전히 진학하여 우리 학교에서 좀 더 행복한 아이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걱정과 바람은 지수중학교 교장이 끝나더라도 한 동안 유지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