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세상살이, 운명, 그리고 꿈.

by 김준식

알 수 없는 세상살이, 운명, 그리고 꿈.


『장자』 속에 꿈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장자’와 나비 이야기를 하지만 나비 이야기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인 거북이 이야기도 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송나라(‘장자’가 살았던 나라) 원군(춘추 후기의 송나라 군주, 『장자』 ‘전자방’에도 그 이름이 있다.)의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저는 재로宰路라고 하는 연못에서 왔습니다. 저는 청강淸江의 神을 위해 황하黃河의 神 하백河伯이 있는 곳에 심부름을 왔는데, 어부인 여차余且가 저를 잡아버렸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하고 사라져 버렸다.


원군이 어부인 여차를 수소문해서 물어보니 과연 등 껍질이 5척이나 되는 흰 거북을 잡았다고 말했다. 왕이 신관(몽상관) 거북이를 어찌할까 물었더니 거북이를 죽여 점을 치면 모두가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왕은 거북이를 죽여 점을 쳤다.”(『장자』 ‘외물’)


결국 거북이는 어부의 그물에 걸린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다가 오히려 꿈속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했던 그 원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다.


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물인 거북이조차도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다는 ‘장자’적 회의주의가 짙게 드리운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 이야기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보통의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아주 대단한 일로부터 결정될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아주 사소한, 어쩌면 알아차리기조차 어려운 미세한 일로부터 시작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그런 상황을 느끼며 사태를 본다. 나 자신의 삶에 누구보다도 더 충실했던 지난 63년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틀림없다. 앞으로의 삶,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다가올 시간은 현재의 내가 만들고 있다. 미세한 선택과 미세한 결정이 거대한 결과로 내 삶에 나타날 것이다. 두렵고 떨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선택과 결정이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거북이가 자신이 죽을 것을 예견하며 원군의 꿈에 나타났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 선택을 한 것은 거북이고 그 결과도 역시 거북이에게 돌아갔다. 원군의 꿈에 나타난 결정은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한 것이었다.


아무도, 누구도 자신의 삶을 부정적으로 설계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미세한 행동, 태도, 결정이 위 이야기의 거북이처럼 자신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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