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by 김준식
67.1 × 48.9 cm, oil on lime. Alte Pinakothek

화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방식은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래된 인간의 욕망이다. 하지만 고대 절대 권력 사회에서 화가 스스로 자신을 그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이것은 중세 기독교의 절대 권위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왕권의 부정이나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한결 부드러워진 사회분위기 탓에 화가 스스로 자신의 그림 속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했던 욕망이 구체적으로 그러나 여전히 은밀하게 실현된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당연히 독립된 자화상은 아니다. 다만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최후의 심판(Giudizio universal, 1536-1541)’이나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의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 1509-1511)’에서 보는 것처럼 알 수 없는 암호처럼 그림 가운데 자신을 표현하거나(미켈란젤로) 혹은 그림 한편에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해(라파엘로) 놓음으로써 화가의 자기표현에 대한 최소한의 욕망을 실현하고 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1434)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 1390-1441)는 드디어 화면 전체에 완전한 자신의 얼굴만을 그렸는데(터번을 쓴 남자의 초상: Portret van een man met rode tulband, 1433), 서명이 존재하지 않아 화가 자신의 자화상인가 하는 논란은 있지만 자화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만약 자화상으로 본다면 이것은 중세를 넘긴 근세 서양 회화에서 거의 최초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는 그림이다.


많은 유명한 화가들이 자신을 그리고자 했던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인간의 자아실현 욕구와 맞닿아 있다. 현대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가 창안한 욕구 단계 피라미드(Maslow's hierarchy of needs)에서 최상위에 있는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는 자신이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헌신하여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고 자기완성을 이루려는 욕구로 풀이하고 있다. 즉 화가들이 회화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자아실현 욕구의 가치가 수렴하여 이루어낸 것이 바로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그는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겼다. 그런가 하면 근세에는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980)도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안정적인 정신상태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자화상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이 묻어난다.


우리나라의 공재 윤두서(1668-1715)가 그린 자화상은 불과 가로 20.5㎝, 세로 38.5㎝의 작은 종이 위에 그린 300년이 지난 그림이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흐 보다야 덜하지만 공재의 삶도 슬픔이 많았다. 그가 그의 자화상에서 눈을 강조한 것은 슬픔의 표현일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이러한 그의 삶에 바탕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그의 얼굴과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회화에서 왕의 御眞(어진) 외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가히 혁명적인 기법이었다.


그런데 공재보다 거의 200년이나 앞서 지금의 독일(당시는 신성로마제국 지역으로서 프로이센으로 통합되는 무렵)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자화상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AD’라는 사인을 남겨 그가 그린 스스로의 얼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자화상에 스스로 사인한 년대는 1500년인데 이 시기 뒤러가 살았던 지역은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의 범위 안에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각 제후국들이 프로이센이라는 새로운 세력으로 결집하려는 무렵이다. 따라서 중세의 그림자가 약간은 희미해진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뒤러는 헝가리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금세공 조수로 일하다가 프로이센(훗날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개척자 M. 볼게무트(Michael Wolgemut, 1434-1519)에게 사사(師事)하였는데 이때 목판 기술도 익혔다. 당시의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그도 이탈리아 여행(1494년 첫 번째 여행)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 그가 그린 수채 풍경화는 독일 예술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 순수 풍경화라고 할 만하다.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후 그는 스스로 ‘AD’라는 사인을 그림에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린 자화상은 이전의 자화상과 구분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먼저 배경의 완전한 제거를 들 수 있다. 즉, 완전한 어둠 속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빛이 오른쪽 이마 위쪽을 비추고 있는데 이것은 이탈리아 여행 동안 이탈리아 중세 회화를 통해 빛을 회화에 끌어들이는 방법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 그의 자화상에는 원근감이 희박하다. 당연히 검은 배경이라서 그렇지만 인물 자체를 정면으로 그리는 탓에 얼굴 윤곽에서 원근감이 뚜렷하지 않다. 이러한 표현방법은 당시의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오히려 이것은 뒤러의 독창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근엄한 표정과 머리카락 위로 반사되는 빛, 옷깃을 살짝 여미고 있는 오른손 등 전체적인 모습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차용한 진리의 형상(Vera icon)이라는 대전제를 자신의 초상화라는 도구를 빌어 표현하고 있다. 특히 그의 손 모양은 중세 회화 속에서 예수의 축복을 의미하는 손동작과 매우 유사하다. 네덜란드의 화가 메믈링(Hans Memling,1430-1494)의 Blessing Christ(축복해주는 그리스도)에 등장하는 예수의 손 모양과 뒤러의 손 모양은 너무나 흡사하다. 즉 그는 자신을 이미지를 예수와 동일시할 만큼 자의식의 강했고 이러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매슬로우가 말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왼쪽에는 뒤러의 ‘AD’ 사인이, 오른쪽에는 라틴어로 "Albertus Durerus Noricus ipſum me propriis fic effingebam coloribus ætatis anno XXVIII." 쓰여 있는데 영어로 풀이하면 "Albert Dürer of Nuremberg, I so depicted myself with colors, at the age of 28." 이고 우리 말로 하면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 세 때의 모습을 색채를 통해 스스로 묘사함." 으로 해석된다.


피나코텍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Frontal Portrait mit Idealisierung vergleichbar mit Christusdarstellungen; betonter Blick und die schöpferische Hand als Werkzeuge des Künstlers(그리스도의 표현에 필적하는 이상화 된 정면 초상; 긴장된 표정과 예술가의 도구로서의 창조적 인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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