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odiennete(일상성)

by 김준식

문명이 시작된 이래 자연의 법칙에 따라 유지해 왔던 인류의 삶이 급격하게 달라진 것은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노동력이었다. 생산을 위해 기계가 필요했던 인간들이 이제는 생산을 위해 창조했던 기계에 의해 운용되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들은 기계와 생산품을 독점한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마치 기계처럼 일정 시간의 노동과 휴식의 과정을 부여받았는데 이것은 좀 더 효율적인 생산 증대를 위한 것으로서 인간의 삶과는 무관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즉 근대의 일상(日常)이 탄생한 것이다.


즉 일상이란 사전적으로는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조화된 삶의 과정으로 풀이되지만 엄밀하게는 산업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루를 24시간으로 구분 지은 것은 이집트 시대로 올라간다. 그리고 중세 유럽에서 고리대금업을 위한 시계의 정밀화에 따라 24시간제는 거의 굳어졌고 현재는 인류 공통이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농경 사회에서 24시간제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낮과 밤의 구분만으로도 충분히 유지되는 것이 농경사회의 특징이다.


24시간제가 필요한 사회는 농경사회가 아니라 기계에 의해 끝없이 생산품이 쏟아져 나오는 산업사회로서 시간을 정해 놓지 않으면 도저히 쉴 수 없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하루 8시간 노동 제이다. 즉 하루 24시간을 3 등분하여 8시간은 자고 8시간은 먹고 마시고 쉬며 또 8시간은 노동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무엇을 위한 구분인가는 자명하다. 오로지 인간을 생산의 입장에서만 보는 지극히 비 인간적인 시간 구분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초 마르틴 하이데거는 일상의 의미를 그의 철학적 방법론인 현상학적 방법론을 통해 재해석하였는데 그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일상성(Alltäglichkeit)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일상성은 불가지론에 가까운 내적 의미의 인간 실존에 대한 공리적 규명으로써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에 대한 심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즉, 하이데거가 말하는 일상성은 인류 보편의 역사에 항상 존재해 왔던 인간 실존적 일상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내려는 시도였다. 일상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분석은 1961년 프랑스의 사회주의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쓴 『일상성의 사회학의 기초』라는 책에서였다.


르페브르의 이론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기초한 것이었으므로 엄밀히 말해 20세기 말에 폐기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의 일상성에 대한 분석 중 “교환 이론”에 의한 분석은 지금도 유용해 보이지만 모든 이론이 그렇듯이 언제나 허점이 있고 그 허점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커지는 듯하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일상은 비참함과 견고함 그리고 위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2018년 4월 25일 밤 일상을 정리한다. 이런 날은 구불구불한 Jazz를 듣고 싶다. Jazz를 들으며 가혹한 일상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객관적인 나를 본다.


George Benson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출신의 재즈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이다. 다분히 Pop적인 요소가 많은 음악에서부터 순수 Jazz까지 음악의 폭이 넓다. 그의 목소리로 " In Your Eyes"를 듣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DrXXMTH-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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