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하는 수 없이 밖에서 먹었다. 식당은 이미 자리가 가득 차 소란스러웠다. 식사 도중에 몹시 시끄러운 사람들이 있어 돌아보니 부부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남녀 4명이 앉은자리였는데 그중 남자 두 명이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매우 큰 소리로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식당 안의 손님 대부분은 그 사람들이 하는 말투와 소리의 높이, 그리고 말의 태도에 불쾌함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제지하거나 항의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들의 말 투로 보아 항의와 제지가 더 큰 사단을 불러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저런 태도는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돈과 권력이 주는 태도라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고 일상의 태도라고 보기에는 너무 과격하거나 무례한 저 알 수 없는 태도를 나는 나이 탓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져본다. 보기에 50대 후반인 그들은, 젊은 세대들이 흔히 하는 말로 ‘할줌마’ ‘할저씨’들이다. 아직은 할머니가 아니지만 아주머니보다는 나이가 많은, 역시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아직은 젊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는 말인데 그 속에는 ‘무례’ ‘안하무인’ ‘막무가내’의 의미가 중첩된 단어들이다.
나 역시 그런 나이지만 아직은 조심하려 한다. 물론 나를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한 동안 떠들더니 잠잠해진다. 그리고 다시 더 큰 소리로(식당 안이 소란스러우면 소란스러울수록 더 큰 소리를 낸다.) 이야기한다. 들리는 단어들로 추론해 보자면 요즘 시국 문제와 한 때 세상을 주름잡던 자신의 과거사, 그리고 제법 살만한 살림살이, 골프, 등등의 주제를 쉴 새 없이 내뱉는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면서 좀 더 찬찬히 그들을 살펴본다. 그들의 태도와 말투로부터 알 수 없는 저항감과 아주 얇은 분노를 느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장면 2
인터넷 ‘Daum’ 포털에서 제공하는 ‘brunch’라는 가상공간이 있다. 글을 올리는 기준은 자체 심사를 통해 필자를 선정하고 선정된 사람들에게 일정 공간이 주어진다. 글의 내용은 사람만큼 다양하다. 나 역시 그런 방식으로 ‘brunch’라는 곳에 글을 올린다.
오후에 여기에 올린 여러 사람의 글을 보다가 마음에 걸리는 어떤 이야기를 발견했고 그 글을 쓰신 분께 댓글을 통해 나의 의견을 살짝 비쳤지만 밤이 되어도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를 테면 내용은 이러했다. 현재 일본 아베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실리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문제는 이 글의 마지막이 문제라면 문제다. 전체적으로 실리를 추구해야 함은 맞으나 전체의 명분 대신에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가족을 풍요롭게 먹여 살릴 수만 있다면”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명분과 자존심 따위는 과감히 버릴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문득 며칠 전 개봉한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장군과 역시 항일 무장 투쟁 중에 목숨을 잃고 70년 이상을 생사 불명으로 있었던 나의 조부가 생각났다. 그 양반들이라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굴욕을 견디며 살고 싶지 않았을까? 도대체 이 글대로라면 항일운동으로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들은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없는 사람들인가? 혼란스러웠다.
그 글을 쓴 사람의 직업은 “변호사’라고 했다. 그분은 글 속에서 자신은 정치도 경제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이 더 무섭다. 모른다는 것이 과연 무지일까? 아니면 외면일까? 그도 아니면 선택적 무지일까? 셋 중 그 어떤 것이라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법을 다루는 직업이다. 법은 공정, 즉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하여 변호사는 엄청난 지식의 인증을 요구받는다. 고시를, 변시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시험은 정치, 경제가 녹아 있는 엄청난 법률지식을 요구받는다.
그분의 진의를 왜곡할 수도 있다. 아니 차라리 내가 왜곡하고 있는 것이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1%에 속하는 지식인들이 지금의 사태를 보는 관점이 이렇다면 우리는 다시 구한말로 되돌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노리는 것이 미국이든 일본이든 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존재들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풍이 온다는 밤 몹시 처절한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