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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리 Jun 26. 2020

 고무장갑을 끼고 사라졌던 회장님이 그립습니다.

사무실 화장실청소는 누구의 몫인가?

간절히 바라고 고대하는 남편의 이직준비는 여전히 제자리상태. 그래도 매달 한번씩은 꼬박 연차를 내고 면접에 다녀오는데, 그때마다 한숨만이 적립된다. 지금의 회사가 만족스럽지 않아 적을 옮기려는 것인데 지금보다 더 안 좋은 곳이 허다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됐을 때의 그 무력감.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너무 안쓰럽다.




며칠전이었다. 점심으로 좋아하는 마파두부덮밥이 나왔다며 전화가 온 남편의 목소리는 분명 달랐다. 아무리 긍정적이고 해맑은 친구라해도 32살 성인이 마파두부 하나로 저렇게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했다.


"여보! 나 면접제의 왔어요! 지금보다 가깝고, 나름 규모도 크고! 다음주 월요일에 꼭 오라고 했어!"


기다랗게 늘어지는 미역국을 먹다가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기쁜 마음에 미역을 입술에 붙여놓고 대박대박을 외쳤다.아직 잘 모르지만, 그리고 면접도 본것도 아니지만 설레발이 주특기인 나는 남편이 조금 더 가깝고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괜히 벅참이 올라왔다.


그리고, 두시간쯤 지났을까.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나 어떡해야 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일인가 하고 봤더니, 면접 예정 회사의 평가가 적혀있는 캡쳐본이 있었는데 다소 충격적인 말들이 담아있었다.


-화장실 청소도 시킴

-월급도 자주 밀림

-군대 다시 가고싶으면 지원하세요.



-

날아갈 것 같던 남편의 목소리는 30분만에 지하를 뚫고 저 아래로 내려가버렸다. 오랜만에 규모있는 회사의 면접제의에 신이나버렸는데 그 즐거움을 즐기는데 한시간을 가지 못한 거다.


나름 큰 회사가 월급이 밀릴 수가 있을까? 군대를 가는 것보다 더 최악이라면 그 끝은 무엇일까? 아니 그리고 화장실청소를 직접 해야한다고????


-

고무장갑을 꼈던 회장님


작년에 계약직으로 일했던 그곳은 정말 신의직장이었다. 조그마한 협회였는데 9시 출근, 5시 퇴근에다가 1분이라도 모니터를 늦게 끄면 혼나는 곳이었다. 일이 그렇게 하고싶냐고 빨리 퇴근하라며 등 떠밀던 곳, 공휴일만 되면 자체적으로 징검다리휴가를 만들어 일주일 통으로 휴가를 주었던, 삶과 일의 균형이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던 내 인생 최고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빠다코코넛을 좋아하셨던 우리 회장님은, 화요일 오전만 되면 고무장갑을 끼고 왔다갔다하셨는데. 알고보니 회장님은 건물 내 남자화장실을 직접 청소하셨던 것이었다. 와, 처음에는 회장님이 거친 숨을 몰아쉬시며 문을 여닫으시며 움직이시기에 도대체 무얼하시나 싶어 봤더니, 회장님 손에 씌어진 빨간고무장갑.


주임님은 건물 청소를 해주시는 여사님이 있으시긴 한데, 회장님이 남자화장실은 본인이 하겠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스쳐지나간 회사까지 총 6개의 곳을 다녀봐도 조직의 우두머리가 화장실솔을 들고 변기를 닦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내게는 참 센세이션한 일이었다.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하는 회사의 면접제안을 받은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침이면 고무장갑을 끼고 조용히 사라지던 회장님이 그리워졌다.




-

직원이 해야 할 일, 하지 않아도 될 일


직원이 해야 할 업무의 확실한 구분이 필요하다. 몇주 전  점심에 사무실에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차를 내리던 한 유튜브(직장인)의 모습이 화제였다. 그리고 댓글은 분노의 피바다로 가득찼다. 요즘 세상에 회사에서 설거지를 하는 경우가 어디있냐, 왜 그런짓을 하는 거냐 등등의 여러 의견이 많았다.


아 이런 말 하면 책임감 없고, 사명감 없고 끈기없는 젊은이라고 한소리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해야겠다. 직원에게 공적이 업무 외에 쓰잘떼기 없는 걸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회사의 사장이라면 스스로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아니면 스스로 고무장갑을 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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