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비롯한 많은 도시가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역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이를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반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문화 자원이 풍부하더라도 시민이 이를 학습하고 활용할 통로는 부족한 것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 ‘지역문화 자격시험’이란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험이라는 이름이 조금 딱딱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 동네 문화를 제대로 알고 나누도록 돕는 과정이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은 한 번 잃으면 되살리기 어렵다. 그런데 책이나 전시, 공연만으로는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민이 직접 배우고 확인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격시험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 학습한 사람에게 인증서를 주고, 문화 해설이나 교육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곳의 문화를 지키고 전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관광과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정해진 과정을 거쳐 인증을 받은 해설사나 강사가 있다면 방문객에게 더 정확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관광객의 만족도도 함께 높아진다. 동시에 학교와 평생교육기관에서도 시험 과목을 활용해 교육 과정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시험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히 운영되는 문화교육의 틀이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시험과 함께 관련 서적의 출판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험이 도입되면 자연스럽게 교재, 문제집, 해설서, 가이드 북 등 다양한 출판물이 뒤따른다. 지역의 역사·문화·관광명소를 다루는 교재와 예상 문제집 등이 제작되고, 지역 출판사와 연구자들이 참여해 이를 집필·편집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역문화를 담은 출판물이 시장에 퍼져나가게 된다. 시험이 문화 학습과 인증을 매개하면서 출판과 교육을 함께 묶어주는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
인천 문화 자격시험은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지역의 역사, 전통, 관광지, 민속, 예술 등을 묻는다. 그리고 객관식과 단답형, 서술형을 섞어 암기보다는 이해와 설명 능력을 평가한다. 시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같이 진행해 누구나 쉽게 응시할 수 있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합격한 사람에게는 인증서를 발급하고 문화 해설사나 교육 강사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해 ‘공부인증활동확산’의 흐름을 만든다.
특히 공공기관 취업 예정자와 공무원 승진 시험에 연계하는 방안도 주목할 만하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채용 공고와 내부 승진 심사에서 지역문화 자격시험 합격자에게 가점을 부여하거나, 신규 공무원과 공공기관 신입 직원 연수 과정에 이 시험을 포함해 기본적인 지역문화 교육을 의무화할 수 있다. 특히 문화·관광·교육 분야 담당 공무원의 승진 심사나 직무 전환 시에 자격시험 합격 여부를 능력 평가 항목에 포함하면 지역 문화행정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 처음에는 시범적으로 공무원 연수·채용에 적용해 운영 경험을 쌓고, 이후에 조례와 지침으로 공식화하면 수용성을 높이면서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시험은 주민뿐만이 아니라 공공부문 전문인력 양성 과정으로도 기능하게 된다.
시험을 준비·운영하는 과정에는 지자체와 관련 기관, 학계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내용과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아 꾸준히 개선하면 지역문화 자격시험이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만드는 살아 있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일본 교토에서는 ‘교토 관광문화 검정시험’을 운영하며 교토의 역사, 문화, 전통산업, 관광명소를 깊이 있게 다루고 초급부터 상급까지 다양한 단계로 구성하고 있다. 이 시험은 관광산업과 연결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힘을 보태고 있으며 자격시험이 지역의 가치와 자부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시험이 자리 잡으면 주민이 ‘문화의 손님’에서 ‘문화의 주인’으로 바뀐다. 준비하고 합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는 곳의 역사·문화·예술을 익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게 된다. 인증받은 해설사와 강사가 늘어나면 관광 경험이 좋아지고, 지역문화 콘텐츠 개발도 활발해진다. 여기에 시험 관련 출판과 교육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고 공공기관 취업 예정자·공무원의 직무·승진과도 연계되면 지역문화와 행정, 산업을 함께 묶어주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시험이라는 틀이 사업을 지속시키는 기반이자 주민·기관·전문가가 함께 관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인천 문화 자격시험은 시험이라는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우리 지역의 문화를 우리가 먼저 알고 지킨다’는 의미와 함께, 학습·인증·출판·공공인력 양성이 연결된 지역 문화생태계의 밑그림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