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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을 드러낸 축제 포스터, 투명성과 오해 사이

by 손동혁

대부분의 축제 포스터는 비슷하다. 날짜와 장소, 그리고 제목과 프로그램 목록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최근에 보게 된 한 장의 포스터는 뭔가 달랐다. ‘동대문구 맥주 축제’라는 제목 아래, ‘총예산 0억 원’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홍보물에 예산을 직접 명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예산 정보는 언론 기사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식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 주민 누구나 볼 수 있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시도는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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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투명성 확보’라는 긍정적인 의도이다. 주민들의 세금으로 진행되는 지역 축제는 그 예산 사용을 투명하게 공개할 책임이 있다. 포스터에 총액을 명시하는 행위는 ‘우리의 예산 사용은 떳떳하다’는 선언과 같으며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 정도의 돈으로 이런 규모의 행사를 여는구나’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행정의 불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쌓여있을 때에 이렇게 공개된 숫자는 신뢰를 회복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또한 ‘책임성 강화’로도 이어진다. 예산을 공개한 이상, 주최 측은 더 꼼꼼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운영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 역시 ‘예산 규모에 비해 얼마나 알차고 의미 있었나’를 평가하게 된다. 이는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이고 행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은 행사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인데, 총액이 부각되는 순간 행사의 성과가 숫자로만 평가될 위험이 있다. “이 돈을 쓰고 겨우 이 정도야?”라는 불만이 쉽게 제기될 수 있다. 프로그램의 질, 주민 만족도, 사회적 파급 효과와 같은 무형의 가치는 가려지고, 돈의 크기로만 평가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부 내역이 빠진 상태에서 총액만 제시되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예를 들어 수억 원의 예산 중에 상당 부분이 안전 관리, 시설 대관, 인건비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사용되는데도 주민들은 이런 맥락을 모른 채 ‘과도한 지출’이라고 오판할 수 있다. 이럴 경우는 불필요한 논란을 증폭시키게 된다. 정치적인 맥락에서도 민감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둔 시기라면 이런 숫자는 쉽게 ‘예산 낭비’라는 공격의 소재로 전락할 수 있다. 투명성을 보여주려는 행위가 오히려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예산 공개 자체는 분명히 긍정적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포스터는 본래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물인 만큼, ‘총예산 0억 원’이라는 숫자를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포스터에는 ‘투명하게 공개되는 축제’라는 메시지를 담고, QR코드나 별도의 홈페이지를 통해 세부 예산 내역을 상세히 공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주민들은 원할 때 언제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행사의 가치를 돈의 크기로만 판단하는 오해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예산 내역만이 아니라 성과 지표를 함께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 참여율, 지역 상권 매출 증대 효과, 자원봉사자 규모, 사회적 파급력 등 다양한 지표와 예산 정보를 함께 제시한다면 ‘그 돈으로 어떤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어 진정한 의미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동대문구 맥주 축제의 포스터는 신선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느껴진다. 투명성과 오해 사이, 그 경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주민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될 수도,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개’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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