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 왜 웃는 것일까
아주 가끔 기업 탐방이라는 것을 합니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요. 걍 시간 맞을때 초대받아 찾아가서 휙 둘러보는 수준입니다. 직원들이 "저 새끼는 뭐지?"라는 눈빛으로 힐끔거리며 스쳐가는데 이게 또 은근히 뻘쭘하면서 재밌어...물론 왜 재미있는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42년이나 함께했으나 가끔은 나도 날 모르겠습니다. 이거 뭐하는 놈이지.
여긴....어디지?
추운 겨울날 용산 대통령실의 기운을 듬뿍 받은 더스윙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과연 용의 기운을 품은 신성한 땅은 다르더군요. 졸라 추웠습니다. 또 많이 변했고요. 한발한발 걸어가 봤습니다.
더스윙 사무실로 찾아가는 길은 아주 간단합니다. 역 근처에요. 그러나 군 복무 당시 훈련을 뛰며 분대원들을 이끌고 민가로 침입해 당당히 사단 헌병대까지 출동시켰던 제 예민한 방향감각은 역시나 녹슬지 않았기에, 기어이 1층까지 직원을 불러내고야 마는 참사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실장님. 그날은 표정이 안좋더군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7시. 당연히 직원들은 거의 퇴근했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계시더군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니 엠쥐스럽지 못하군. 실장님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우선 엄청 넓어요. 그리고 뭔가 힙해요? 예전 샌드박스네트워크가 들어와있던 자리라 스튜디오 소품들이 남아있는데 이게 또 소품 역할을 하더군요. 걍 정리가 안된거 같은데 걍 또 힙해. 노린건가 싶었는데 딱히 그런건 아니라고 하네요.
널찍한 회의실과 로비를 지나 수근거리는 직원들을 스치니 'ON AIR'라는 라이트가 들어온 별도의 공간이 보입니다. 그 안에는 몇몇 직원들이 수척한(?) 얼굴로 무언가(?)를 하더군요. 방송국인가 싶어 물어보니 고객센터라고 합니다. 스윙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불만사항을 빠르게 접수하고 해결하기 위한 허브라고 합니다. 그걸 방송국 컨셉으로 해두니 또 뭔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오 괜찮은데 싶으며 지나던 순간 직원 한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도망쳐'
뭔가 찝찝함을 느꼈으나 실장님의 채근에 탕비실로 갔습니다. 오! 알고케어를 봤습니다. 영양제를 챙겨주다니! 직원의 건강을 챙겨주는 더스윙의 경영철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쌔끈한 알고케어를 보는 순간 뭔가 싸한 생각도 드는군요. 간단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직원들을 뽑아먹으려고 영양제를 주는거야..그러고보니 이 늦은 시간에 왜 다들 퇴근도 안하고 일하는데...저 붉은색 'ON AIR'는 왜 불길한거야. 사무실 곳곳에 가득한 식물로 친환경적인 분위기를 꾸몄는데 왜 내 눈에는 정글로 보이는 거지..그러는 사이 실장님이 휴게실에 있는 초콜릿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습니다. "우리 회사는 초콜릿도 많이 줘요 하하" 웃지마세요 슬프잖아...
이곳을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데 폐쇄된 부스들이 보이더군요. 그 안에는 사바세계와의 인연을 차단당한채 알고케어가 주는 영양제와 휴게실의 초콜릿을 주입당하며 죽도록 일만하는 사람들이 갇혀있었습니다. 구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죄송해요. 저는 눈물을 머금고 사무실을 탈출해 실장님과 사이좋게 인근 고기집에서 소주먹고 달렸습니다.
원팀으로 뭉치면 못할 것이 없지
가끔 다른 사무실에 갔을 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습니다. 적당한 소란에 적당한 소음. 그러면서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통하며 뭔가 나아가려는 그 공기의 떨림.
더스윙이 그렇더군요. 직원들은 하나로 뭉쳐 유기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그 각각의 생명력이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강하게 꿈틀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다들 졸라 열심히 일해요. 김형산 대표님도 오랜만에 봤는데 사바세계와의 연을 끊어주는 부스에 갇혀 솰라솰라 영어로 일만 하더라고요. 영양제 넣어줄 뻔.
적당한 원목 인테리어에 높은 천장. 그리고 실장님이 틈만나면 어필했던, 식물과 함께하는 친환경 에코 프리미엄 ESG 그린 에너지 수소 에너지 환한 햇살을 연상하게 만드는 후레쉬한 녹색의 향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 안에서 보였던 살짝 '달 뜬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지나치게 흥분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의 일을 알아서 해내고 있는 수 많은 직원들의 분절과 연대. 보는 사람마저도 묘한 힘을 받게 했습니다.
물론 잠깐 들러본 후 남기는 소회라 현실과 다를수는 있겠죠. 실제 직원들이 이 글을 본다면 뇌절이 올 수 있겠지만, 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네요. 오랜만에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을 구경했습니다. 뭘해도 잘 하겠네요. 더스윙은.
아. 눈물을 머금고 사무실을 나올때 더 눈물이 나는 장면도 봤습니다. 사무실 한켠에 텅 빈 자리들인데요. 여기는 왜 이렇게 자리가 비어있냐 물으니 토스로부터 타다 인수한 후 직원들이 일할 자리였다고 하더라고요. 아. 정말 눈물이 앞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