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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Apr 08. 2017

삼디 프린터, 그리고 대통령의 자격

까일만한 일이냐 vs 까여야만 한다

초유의 장미대선을 앞두고 삼디 프린터 논란이 정계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수 쌈디 이야기인줄...

IT 기자 입장에서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관련 이슈가 촉발되어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환영합니다. 죽일놈의 액티브 액스 이후 또 한 번 IT 이슈가 등장하는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내막을 들어보니 허탈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지금부터 그 허망한 프레임 논쟁을 살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이건 사견이라는 점도 밝혀둡니다.

심블리와 문재인

느닷없는 삼디 프린터 논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당내 경선 토론에서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 공약을 설명하며 나온 말이에요. 삼디 프린터라....


논란은 지난 5일 극대화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손에 꼽힐 수준의 3D 프린터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정치인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에 나서며 "국가 경영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이라고 잔뜩 날을 세웠어요.


일이 커졌습니다. 당장 문재인 후보가 나섰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무슨 홍길동이냐"며 "3을 삼이라고 읽지 못하고 쓰리라고 읽어야 하나?"며 반발했지요. 하지만 논쟁은 점점 심해지는 분위기입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6일 관훈틀럽 토론회에서 "전문가들 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발음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보면 3D 프린터(스리디 프린터)라고 읽는다"는 말로 문재인 후보를 저격했어요. 박지원 원내대표도 "발음 억지 부리는 문재인, 대통령 자질이 없다"고 거들었지요.


다만 정의당은 문재인 후보 편입니다. 임한솔 정의당 선대위 부대변인은 7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양 진영 간의 경쟁이 퇴행으로 치닫고 있다"며 "단순 말실수를 두고 후보까지 직접 나서 공방을 벌이는 게 과연 촛불시민의 염원에 부응하는 개혁 경쟁인지 양 후보 측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3D 프린터를 제작하고 있는 삼디 프린터도 언론을 통해 문재인 후보와 정의당의 입장에 무게를 실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한글문화연대는 성명을 통해 "쓸데없이 외국어 사용하는 잘못 저지르지 말아야"라며 안철수 후보에게 날을 세웠죠.

메르스 기자회견


"의도된 멍청함이 폭발한다"
한 번 살펴봅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가 아닌, 스리디 프린터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는 나름 외연적 확장을 거두고 있는 시장인데 국내에서는 나름 바람을 타지 못한 부분이 바로 3D 프린터에요. 그래서 애정을 가지고 관련 분야를 여러번 취재했는데 3D 프린트를 삼디 프린터라고 부르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문재인 후보가 "3을 삼이라고 읽지 못하고..."라고 말한 부분은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물론 3을 삼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한글을 사랑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윈도97을 전 윈도구칠이라고 읽어요. 상황에 따라 다른 것 맞고, 무조건 외국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3D 프린터의 경우 솔직히 스리디 프린터라고 읽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삼디 프린터로 읽으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삼디 프린터로 읽었다는 것 자체가 해당 영역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논리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후보는 4차 산업혁명을 논하며, 일자리를 논하면서 3D 프린터의 존재를 잘 몰랐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를 두고 "엄연히 한글이 있는데 우리가 왜 쓰리라고 읽어야 하는가"라는 주장은 좀 어색해요. 만약 3D 프린터를 스리디 프린터로 읽을 줄 알았다면 굳이 업계 통용인 스리디 프린터라는 명칭을 피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문재인 후보는 트위터를 통해 "착오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스리디 프린터라고 부르는 것이 맞으며, 관련 이해가 낮았다. 하지만 중요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그런데 뭐 어떤가. 궁색하지만 한글 사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하하하"라고 넘겼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후보 본인이 잘 몰랐던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이를 약간의 유머영역으로 당겨오는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물론 살얼름판을 걷는 지경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삼디 프린터처럼 업계의 세세한 부분을 대선 후보(우두머리)가 완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가'와 '정치적 공세와 검증의 간극'이라는 담론입니다.


전자부터 보겠습니다. 김종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박지원 원내대표 비판의 기저에는 '단어를 몰라?'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닌, '단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이를 고려한 정치를 할 수 있겠나'라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진짜 그럴까요?


물론 대선 후보, 즉 우두머리가 3D 프린터의 정의를 명확히 알고 명칭마저 확실하게 알았다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참모라는 것이 있으며 싱크탱크가 있고 커다란 정책적 방향이 협의되어가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명칭을 제대로 모른다는 지적이 곧장 '자격이 없다'로 이어지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왜? 3D 프린터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지만 솔직히 '원오브 뎀'이며...그 보다 정치인들은 더 중요한 일에 매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쓰다보니 이상한데 경중을 따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두머리는 자신을 따르는 집단의 다양한 의견과 정책을 흡수하고 걸러내 자신과 집단의 정체성을 확정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겁니다. 그런데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불렀다고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연결고리가 희박합니다.


네, 맞습니다.. 자연스럽게 후자로 넘어가요. 정치적 공세와 검증의 간극. 전 정치적 공세라고 단언합니다. 문재인 후보가 3D 프린터의 존재를 알고 삼디 프린터라고 불렀는지, 모르고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이는 이슈 아이템이 아니에요. 그냥 상대편의 프레임 전략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낙인효과. 그러니까 정치적 공세. 물론 문재인 후보도 실수했어요. 삼디 프린터라는 명칭 자체가 일반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인정을 했어야 해요.


여담이지만 문재인 후보는 액티브엑스 및 공인인증서 규제 완화를 발표하며 상당히 영악한 행보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사실 천송이 코트 이슈의 문제는 엄밀히 말해 공인인증서의 문제가 아니라 액티브엑스 등의 문제가 맞기 때문이에요. 문재인 후보는 이 지점에서 정확히 문제를 짚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가 공인인증서 및 액티브엑스와 관련된 모든 이슈를 머리속에 빼곡하게 채우고 이런 정책을 발표했을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문재인 후보의 참모그룹, 싱크탱크의 정책이며 이러한 의견이 문재인 후보에게 채택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구조작전

그럼 뭣이 중헐까?
박근혜 정부의 실패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인사적폐? 비리? 국정농단? 다 맞는 말이지만 특히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존재의 부재입니다.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 7시간의 의혹이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고, 비록 탄핵사유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끌어낸 원동력 중 하나라는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맞아요.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은 절대 국민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곤란합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메르스 사태도 대통령 부재 문제가 심각합니다. 감염자 186명, 사망자 38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힌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환바 발생 7일이 지난 후에야 첫 보고를 받습니다. 그것도 서면으로요. 참고로 메르스 사태가 인명은 물론 국가적 비상사태로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 콘트롤타워는 끝내 대통령 급으로 격상되지 않았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바로 대통령과 실무현장의 오묘한 연결고리를 논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심각성을 빠르게 감지할 수 있었던 해운 및 선박 지식이 있었다면?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할 수 있는 의학적 지식이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누구도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전 감히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현장 지식을 세세하게 간파하고 있다면 분명 문제해결에 도움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직업 정치인의 생리상 어려울뿐더러, 탄핵정국에서 밝혀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참모진 운용 및 전략을 보면 별반 다르지 않았을겁니다.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 알면 뭐합니까. 공감을 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측이 세월호 정국에서 한 말, 즉 "왜 빠르게 현장에 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 됩니다. 현장을 잘 모를 수는 있지요. 하지만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현장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는 변명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고요? 현장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정권이 세월호 참사 직후 구조작업을 그렇게 합니까? 의지가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면 무엇이 그나마 좋은 방안일까요? 대통령은 현장을 잘 몰라도 됩니다. 여기까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의지가 중요합니다. 공감하고 생각하며 집단의 역량을 콘트롤할 수 있는 의지.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직후 현장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발을 빼지 말고, 공감하지 못한 티를 그렇게 숨기지 말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현장을 해경이 감당할 수 없기에 대통령의 권한으로 재빨리 군대를 동원했어야 하며, 메르스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살려야한다' 장난질은 관두고 콘트롤타워를 대통령 급으로 격상시켰어야 했어요.


대통령은 현장을 잘 몰라도 됩니다. 알면 좋지만, 모르면 참모의 도움으로 대통령의 힘을 적재적소에 발휘할 수 있는 역할만 수행하면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닌, 의지입니다. 바꾸고,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


우리는 삼디 프린터 논란에서 이 의지에 대한 논쟁을 해야 합니다. 단어 틀렸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요. 제발 생각 좀 하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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