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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쇳덩어리로 만든 진단장비와 검사실을 놀이공원으로

비주얼씽킹 - 창의성과 협업에 스토리를 담아 비주얼로 소통합니다.

우리 몸에 병이 생기면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는데, 이때 사용하는 진단장비가 MRI(단층공명자기장치)다. 이 장비는 몸속의 단면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밀하게 촬영하고 이를 다시 3차원 입체영상으로 재구성하여, 마치 몸속의 구조와 모양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첨단 기계다. 그래서 암과 같은 종양이 존재하는지, 또는 뇌나 심장 속의 핏줄이 막히거나 손상되었는지, 근육이나 힘줄이 끊어졌는지, 등을 진단해 의사가 수술이나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MRI는 우리 몸을 촬영해야 하는 장비라,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큰 사이즈로 제작된다. 그래서 환자들은 무엇보다 그 크기에 압도당한다. 장비를 보는 것만으로 지레 겁을 먹거나 불안해한다. 그뿐이랴, 30분이 넘는 오랜 시간 촬영하면서 엄청난 굉음이 발생한다. 마치 커다란 망치로 쇳덩어리를 힘껏 내리치는 것처럼 크고 날카로운 소음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여 성인조차도 압박감과 공포로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특히 아이들은 더욱 큰 공포에 휩싸여 울음을 터뜨리고 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촬영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 어린이나 노약자들은 신경안정제를 투여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MRI 제작 및 판매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GE 메디컬의 개발자들은 장비의 성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도 환자들이 촬영을 거부하여 병원들이 구매를 꺼리는 바람에 세일즈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태스크포스 팀이 구성되었다. 

우선 장비의 크기와 굉음, 그리고 (사람이 장비 속으로 들어가므로) 폐소공포증의 유발이 문제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가 이렇게 분석된 후 초기에 그들이 찾은 해결책은, 장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굉음 소리를 제거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거나 폐소공포증이 없도록 설계가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MRI의 특성 상 크기를 줄일 수 없었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에 신호를 보냈다가 반사되는 소리를 통해 단층촬영이 되기 때문에 굉음도 필수적이었다. 또 촬영하는 동안 사람이 움직이면 초점이 흐려져서 정확한 영상 확보가 불가능하여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하므로 꼼짝없이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참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문제 해결을 향한 장벽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다가 한 엔지니어가 질문을 통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장비의 구조나 작동방법을 전혀 수정할 수 없다면, 장비를 진단 도구가 아니라 놀이기구처럼 만들면 어떨까?” 다소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놀이공원에 가면 당연히 여러 가지 탈 것을 즐기는데, 그곳의 다양한 놀이기구들은 모두 커다란 쇠로 제작되어 있고, 심한 굉음을 내고 빠르게 움직이고 회전하고 부딪치기도 하잖아?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것을 공포의 대상으로 보기는커녕, 즐거움으로 여기잖아? 오히려 소리가 크고 기구가 클수록 더 신나게 놀잖아?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어드벤처 MRI"다. 바다를 항해하는 해적선처럼 장비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촬영하는 동안 즐거운 항해의 기분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MRI를 경험한 아이는 촬영을 마친 후에 부모나 의사들에게 언제 해적선을 다시 탈 수 있냐고 묻는 모습으로 바뀐 것. 골치 아픈 문제가 창의적으로 해결된 셈이다. 

이 성공사례가 알려지면서 MRI 개발업체나 대형 병원들은 장비 모양을 잠수함, 우주선, 비행기 등으로 바꾸고 촬영실 내부도 잘 어울리게 장식하거나 소품들을 준비했다. 예컨대 잠수정 모양의 MRI에는 어린이 환자가 물속에서 사용하는 수경과 스노클링을 착용하고 들어가도록 하고, 장비에서 나오는 굉음에는 다른 소리를 추가하여 마치 깊은 바다 속 소리처럼 만들어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했다.

창의성은 기존의 관점이나 방법으로 접근하면, 절대로 가까워지기 어렵다. 역발상을 하거나 전혀 엉뚱해 보이는 방향으로 다가갈 때, 창의성은 우리에게 친근한 미소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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