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놀래?

집에도 이름표가 있다

by 김현정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의 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덟 살 소년 아마드다. 실수로 친구의 공책을 집에 들고 간 아마드는 친구에게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길을 떠난다. 어딘지도 모르는 친구의 집을 찾아 이웃 동네를 정처 없이 헤매며 고군분투하는 아마드의 모습을 그린 이 영화의 페르시아어 원제는 خانه دوست کجاست(Khane-ye dust kojast)다. 영어로는 <Where’s the Friend’s House?>로 번역됐다.



똑같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영어로 <Where’s My Friend’s Home?>으로 번역된다. 똑같은 문장인데, 영화 제목 속의 ‘집’은 ‘house’, 예능 프로그램 제목의 집은 ‘home’으로 번역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 속 주인공 아마드가 찾는 대상은 ‘물리적인 집’이고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찾는 것은 ‘삶의 터전’, 혹은 ‘정서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놀래?

그렇다고, 물리적인 공간을 뜻하는 집이 모두 ‘house’로 뭉뚱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캐나다 친구에게 “Let’s hang out at my house(우리 집에서 놀자.)”라고 말하면 속으로 ‘쟤는 주택에 사는구나.’라고 짐작할 게 틀림없다.


친한 친구를 집으로 부를 때 ‘내가 사는 공간에서 놀자’라는 의미를 전달하려면 ‘house’보다는 ‘place’가 낫다.


“Let’s hang out at my place!”라고 이야기하면 어떤 형태의 집에 살든 “우리 집에서 놀자!”라는 뜻을 잘 전달할 수 있다.



캐나다의 집은요~ 이렇게 나뉘어요

캐나다에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주택(house)을 찾는다고 이야기하면 어떤 주택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원하는 형태를 재차 물어볼 가능성이 크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한적한 교외 마을의 단독 주택‘디테치드 하우스(detached house)’라고 불린다. ‘홀로 분리된 채 떨어져 있는 독립적인 주택’이라는 뜻이다. 일정한 크기의 대지 위에 딱 한 채의 집만 세워져 있는, 그런 형태의 집이 바로 ‘디테치드 하우스’다.

단독주택이 늘어선 토론토 거리


똑같이 생긴 집이 데칼코마니처럼 대칭 형태로 붙어 있는 집도 있다. 딱 두 채의 집이 붙어 있는 이런 형태의 주택을 ‘세미 디테치드 하우스(semi-detached house)’라고 부른다. ‘절반쯤 분리된 집’이라는 의미다. 벽 하나를 공유하긴 하지만 두 집은 완벽하게 분리돼 있다. 입구도 두 개이고, 주인도 다르다.


세미 디테치드 하우스 generated by Canva


주인이 다른 집이 여러 채 주르륵 붙어 있는 형태의 건축물은 ‘타운하우스(townhouse)’다. 2~3층 높이의 주택이 3~4채 이상 옆으로 주르륵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층간 소음을 걱정해야 하는 아파트와 달리 타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벽간 소음을 걱정하며 산다. ‘타운하우스’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타운홈(townhome)’, ‘로하우스(row house)’ 등이 있다. (‘row’는 ‘옆으로 늘어서 있는 줄’이라는 뜻이다.)


다섯 채의 집이 일렬로 붙어 있는 오타와의 타운하우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서 교외 타운하우스 단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의 타운하우스는 캐나다의 타운하우스와는 생김새가 다를 때가 많다. 똑같이 생긴 집들이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뚝뚝 떨어져 있는 모양새의 주택 단지가 타운하우스라고 불리곤 한다. 같은 단어지만 그 단어가 사용되는 나라가 어디인가에 따라 그 뜻이 조금은 달라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살 집을 구할 때 내가 원한 건 딱 하나였다.


이층집.


사실 이층집은 내 오랜 로망이었다. 아파트살이가 지겨울 때마다 주택살이를 꿈꾸며 나도 모르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이층집을 떠올렸다. 단독 주택이든, 한쪽 벽을 옆집과 나눠 쓰는 집이든, 양쪽 벽 모두를 각각 다른 집과 공유하는 타운하우스든 무엇이든 괜찮았다.


캐나다 부동산 사이트에는 내 로망과는 거리가 먼 단층집도 더러 있었다. 그 집의 이름은 바로 ‘방갈로(bungalow).’ 널따란 땅 위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방갈로의 외관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똑같은 땅에 이층집을 지으면 공간이 훨씬 넓을 텐데. 방갈로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건가?’


물론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유로 계단 없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방갈로를 특히 사랑하는 건 노년층이다. 나이가 들수록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고 아차 하는 순간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층집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는 말을 듣긴 했다. ‘에이, 그건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걱정할 일이지. 난 아냐.’라고 자신했지만, 살아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급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일 층까지 미끄러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고 이층집도 살아본 사람만이 그 혹독함을 제대로 아는군.’

캐나다에서 종종 마주하는 주택의 또 다른 이름으로 ‘커티지(cottage)’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커티지’의 첫 번째 뜻은 ‘시골집’이다. 캐나다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시골집’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커티지’를 주로 ‘별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전 세계 담수량의 20%가 모여 있을 정도로 캐나다는 강과 호수가 많은 나라다. 그런 탓에 특히 강이나 호수 근처에 있는 별장용 집을 ‘커티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프렌치 리버에 위치한 커티지에서 바라본 풍경


한국과 캐나다에서 부르는 방식이 달라 헷갈리는 집의 이름이 하나 더 있다. 한국에서는 ‘콘도(condo)’라고 하면 흔히 취사 가능한 숙박 시설로 여겨진다. 반면, 캐나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콘도(condominium을 줄여서 부르는 말)’는 숙박시설이 아니라 주거시설이다. 한국에서 보통 아파트라고 불리는 빌딩형 공동 주택이 곧 콘도다.


토론토의 콘도 (@realtor.ca)

이쯤 되면, “그러면, 도대체 아파트는 뭐예요?”라고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캐나다의 아파트도 생김새는 한국의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아파트를 꼭 닮았는데 콘도라고 불리는 건물,

그리고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한데 아파트라고 불리는 건물.


그 둘의 차이는 바로 소유권에 있다.


콘도는 각 세대의 주인이 모두 다르다. 다시 말해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주인일 수도 있고 세입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 건물은 대개 회사 소유다. 하나의 회사가 아파트 건물을 통째로 소유하고 개별 세대를 각 세입자에게 임대하는 형태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집의 이름표도 정말 다양하다. 사람마다 꿈꾸는 공간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제 이층집이 아니어도, 어떤 집이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포근한 공간을 꿈꾼다.


#캐나다 #타운하우스 #하우스 #커티지 #방갈로 #슬기로운 언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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