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묵시록]에 따르면
기존의 전설을 쓰러트린 새 전설을 향해 모두가 박수칠 때 업계를 떠나 버린 사람, 모든 영광을 버리고 새 길을 서슴없이 선택한 사람, 그 길 위에서 시대를 열어버린 사람, 대한민국 역대 최고 예능인 다섯 손가락을 꼽을 때 빠지면 섭섭할 사람, 강호동이다. 최근 유튜브로 [1박 2일]을 다시 보며 그의 위력을 새삼 실감 중이다. 스튜디오에서 다수의 게스트를 아우를 수 있는 장악력과 버라이어티에서 땀 흘릴 수 있는 유이한 존재지만, 당대 No.1이 될 수 없는 비운의 천재. 강호동의 라이벌은 유재석이었고, 유재석의 라이벌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었다. 하늘은 또, 주유를 낳고 제갈량을 낳은 셈이었다.
2010년을 전후로 ‘유-강’ 천하일 때도, 예능인 대우는 부당했다. 가수나 배우처럼 연예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지만 웃긴 사람이라서 우스운 사람 취급당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남아 있으나 현재 유재석 위에 있는 연예인은 없다. 조용필, 서태지의 시대는 저문 지 오래고, 세계를 호령하는 BTS조차도 국내에서는 임영웅의 적수가 안 되고, 임영웅 정도면 강호동 선에서 정리 가능했다. 유느님, 연예계의 유일신. 나는 무한재석교 신자다.
종교가 사람들이 특정 인물을 우상화 하며 탄생했듯, 무한재석교는 하하가 따르고 노홍철이 귀의하며 기반을 다졌다. 하하는 술 좋아하는 딴따라일 뿐인 자신을 [X-Man]과 [무한도전]을 통해 번듯한 연예인을 만들어준 유재석을 우상으로 받들었다. 무한재석교는 예능 문법에서 탄생한 상황극이었지만, 하하는 지금까지 유재석의 가신(家臣)을 충직하게 수행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유재석은 정점에서 당최 내려오지 않는 비인간적 인기 수명을 유지 중이다. 나는 유재석의 삶을 존경한다. 그가 일으킨 기적은 그 자신이다.
유재석의 처음은 결함투성이였다.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은 게 불만이라 귀를 후빌 만큼 건방졌고, 친구 집에서 밥 얻어먹으면서 고기가 없다고 투덜댈 만큼 철도 없었다. 유재석이 주식을 발행한 기업이라면 결코 매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별히 웃긴 것도 아니면서 울렁증만 심했다. 자신조차 연예인 유재석 상장폐지를 고민했을 정도의 고물이었다. [서세원 쇼]에서 입담이 터지기 전까지, 말라깽이의 파닥거림은 애처로웠다.
알다시피, 유재석 코인은 비트코인처럼 터졌다. [무한도전]은 유재석의 성장과 완성이 담긴 무한재석교의 성서다. 평균 이하의 삐쩍 빠른 약골에서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어 멤버들 중 그 누구보다 강한 체력을 자랑했고, 거대한 프로젝트마다 자신의 울렁증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을 이끌기 위해 솔선수범하며 자기 한계를 넘어왔다. 진행 능력의 성장은 말할 것도 없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이끄는 능력은 강호동과 용호상박을 이루겠지만, 강호동이 형들이나 여성들과의 관계성이 약한 데 비해 유재석은 모든 유형의 사람들과 조합하며 보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길, 조세호는 유재석의 후광을 먹고 자랐고, [무한도전] 밖에는 지석진, 김종국, 이광수, 양세찬, 전소민, 제시, 이미주도 있었으니 예수님보다 제자 둘은 더 거느린 셈이었다. 아니, 노홍철, 길이 이탈했으니 결국은 이도 용호상박이겠다.
유재석을 유느님으로 옹립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선한 인성이다. 인간의 본성은 권력을 가졌을 때 드러난다. 업계의 정점에서 유재석은 겸손을 잃지 않았고, 약자를 향해 늘 따뜻했다. 여기저기서 간증되는 미담과 기부 사례를 두고 자기 이미지 관리라고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위선을 쌓았다면 이제는 본성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남들은 1인자 유재석처럼 반듯한 틀에 맞춰 사느니 2인자라도 박명수처럼 거침없이 사는 게 낫다고도 하지만 정작 유재석의 반듯함은 이미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무한재석교는 농담이 아니다. 종교의 본질은 상호주관성으로서, 범박하게는 역사 깊은 팬클럽이다. 어느 아랍 목수 팬클럽, 어느 인도 왕자 팬클럽은 BTS 팬클럽과 다르지 않다. 신자들은 우상을 믿고 따르며 우상에게 감화 받고, 나름의 성지, 경전, 노래를 공유하고 굿즈를 소비한다. 소모임을 가지며 구성원끼리 강하게 연대하기를 즐기며 우상의 이름으로 선을 실천한다. 유느님은 현존 인물로서, 미화되지 않았다. 나는 가성비의 소비 감각 때문에 굿즈 소비를 하지 않고, 내성적 성격 때문에 팬클럽 회원과 유대 쌓기를 꺼려하지만, 거의 매일 우리의 성서를 통해 유느님을 영접하고 있으니 성실한 신자인 편이다. 유느님께서는 산은 산이고 물에 물 탄 것 같은 하나마나 한 복음 대신, 손수 웃음을 내리셨다.
나이 들수록 웃음이 귀해진다. 아저씨들은 생물학적 특성인지, 문화적 특성인지 웃음에 더 인색한 듯하다. 술이라도 들어가야 껄껄댈 텐데, 술도 마시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니 웃을 일이 없었다. [무한도전] 볼 때 주로 웃었다. 보고 또 봐서 너덜너덜해진 장면들이 속수무책으로 웃겼다. 덕분에 일주일에 사나흘은 말 한 마디 할 일 없는 일상을 버텼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이 마법과 구분되지 않듯이, 고도로 발달한 예능은 예언서와 구분되지 않았다. 무한재석교의 성서는 코로나와 사회적 거리두기, [오징어 게임], 브렉시트, 유희열 표절, 구준엽-서희원 결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치킨 3만원 시대, 중부지방 집중호우와 남부지방 폭우를 예언했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무한도전] 어딘가에는 그와 관련된 ‘짤’을 예언처럼 찾을 수 있었다. 10년 넘게 방송되며 고정된 포맷 없이 다양한 영역을 건들었기 때문에 어떤 연결고리든 만들 수 있는 것이다. 4년 전 종영된 예능이 현재형으로, 심지어 10여 년 전 스쳐지나간 ‘무야호’를 유행시킬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고도로 발달한 예능’임을 증명한다. 아직도 [무한도전]에 견줄 예능은 없으므로 [무한도전]은 ‘무한 묵시록’이다.
모든 연예인의 죽음은 내게 가십이었지만, 유재석의 죽음은 내 개인사가 될 것이다. 친구의 죽음과 엇비슷한 무게다. 친구들도 1년에 서너 번 볼까 말까한 비일상 존재로 전락한 지 오래라 친구들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 한, 울지 않을 자신 있다. 연결 가능성이 상실되었을 뿐, 친구들이 있든 없든 내 일상은 견고하다. 유재석은 애초에 본 적 없는 사람이자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친구들과 같은 수준의 서사 가능성 상실로 경험한다. 내게 [런닝맨], [유큐즈], [놀면 뭐하니], [식스센스]는 [무한도전]의 후일담이다. 십 년 넘게, 거의 매일 유재석을 봤으니, 유재석의 죽음은 [무한도전]의 여음이 사라진 일상으로 경험될 것이다.
유재석에게 단 하나 아쉬운 점은 노홍철이다. 유재석의 잘못은 아니다. 예수님도 유다는 어찌하실 수 없었다. 유재석의 [무한도전]이지만, [무한도전]의 본질은 노홍철이다. 유재석은 노홍철을 아꼈다. [놀러와] 때부터 살뜰하게 챙겼고, 정형돈이 부칠 때나, 하하의 복귀 때 노홍철과 비교할 정도로 재능을 높이 샀다. 겨울이 박혀 있는 초봄, 술래에게 안 잡히려고 한강에 뛰어든 노홍철 소식을 듣고 ‘미친 거 아냐?’라고 반복하는 혼잣말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노홍철은 유재석의 복음, ‘웃음’의 절정이었다. ‘행복해tjㅓ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tjㅓ 행복하다’는 노긍정 선생은 유재석을 활짝 웃게 했다. 돌아온 탕가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종교는 결국 신자들의 일상에 카리스마를 뿌리 내려야 했다. 그래서 유재석이 [전국노래자랑] 다음 MC를 맡아주길 바랐다. 유재석이 진행한들 나도 보지 않을 프로그램이지만, [전국노래자랑]은 오래된 팽나무처럼 시장을 초월한 권위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단독MC로서 자신의 수명만큼 진행한다면, 유재석의 가치는 천연기념물의 샤머니즘 아우라를 완벽하게 획득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한편으로는 강호동이라도 송해의 후임이 되었다면 역사(力士)의 역사(繹史)를 역전사(逆戰史)로 역사(役事)함으로써 한 하늘에 기록된 두 개의 태양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아쉽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조우 같은 유재석-강호동의 재회는 언젠가 이뤄지겠지만, 과연 유재석과 제자들의 모임을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토크쇼여도 좋고, 게임이어도 좋다. 뭘 하든, 유재석은 멤버들과 있을 때, 편안한 웃음의 최선을 뽑아낼 것이라고 믿는다. 단, 방송사는 상관없지만 프로그램 이름은 [무한도전]이어야 하고 PD는 김태호여야 한다. 그렇게, ‘최후의 만찬’ 같은 ‘천지창조’를 기다린다.
제 웃음의 주님, 유느님. 덕분에 오늘도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