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임당동

가깝고도 낯선 동네

by 하루오

내 첫번째 원룸은 보증금 70만 원에 월 23만 원이었다. 대구 경계 너머 변두리로 밀려난 덕분이었다. 대구 경북대 앞은 고시원이 24만 원이었다. 책상 위로 의자를 올려야 누울 수 있었지만, 머리통만 한 창은 있었다. 3년 만에 중문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내 방을 가지다니, 88만원세대의 막내이자 N포세대의 큰형은 답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쾌적했다. 이어폰 없이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고, 마음껏 웃어도 괜찮았다.


웃을 일은 아니었다. 내 두 번째 원룸은 없었다. 이 방에서 18년째 살고 있다. 네 번째 건물주를 맞았다. 낡아가는 장판과 벽지를 핑계로 월세를 야금야금 17만 원까지 떨어뜨렸다가 작년 재계약하면서 18만 원으로 올려줬다. 건물주의 존엄을 배려할 1만 원짜리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임당동에서, 나는 어영부영 30대를 버텼다. 이제 50대를 바라본다.


이곳은 ‘우리 동네’가 아니다. 그저 내 방이 있는 공간이다. 내 방 바깥에는 모르는 사람뿐이다. 이웃은 같이 없을 때 가치 있는 생활 소음이다. 누군가 나를 아는 체 한다면, 목표 대학에서 떨어지고 인근 대학으로 진학한 내 학생이다. 반갑지만 미안하다.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싶은 적 없었듯, 너도 이 대학에 올 생각은 없었다.


입시는 고3 때야 세상의 전부지만 대학생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종류가 달라져 버린 각자의 안부는 접점이 서걱댄다. 가고 싶은 곳에 닿지 못한 너와, 선생의 외피를 벗으면 임당동뿐인 나는 그럭저럭 안녕한 척한다.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에 머무는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취업이 더 힘들어진 시대, 너도 어른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일 때,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다. 나도, 너도, 너의 30대를 몰랐으면 좋겠다.


부동산 업자가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임당동은 조영동과 더불어 ‘한강이남 최대 원룸단지’를 이뤘다. 영남대, 대구대와 자인 공단의 주거지다. 수요도 많지만 공급은 더 많아 임대료들은 자신감이 없었다. 2026년에도 25만 원 안팎이 주를 이루고, 10만원대 공실도 곳곳에 대기 중이다. 원룸촌은 실제로 넓어서 처음에는 미로 같았다. 1.5km 너머의 세일하는 마트까지 발품 팔아 갈 때 길을 헤매기도 했다. 시야는 온통 원룸뿐이었다. 라면, 3분 카레, 참치캔 등을 매달고 우왕좌왕할 때, 인생을 표류하는 나의 형상화 아닌가, 입술로만 슬쩍 웃기도 했다. 그래도 살긴 사는 거니 괜찮은 건 아닌가,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최소한 돌아갈 곳은 있었다.


시간은 힘이 세다. 대학 정문 롯데리아조차 사라진 사건, 동네 오락실 게임기의 흥망성쇠, 건물주에게 빼앗긴 듯한 감자탕집, 블로그에 소개되지 않은 소나무 동산, 카카오맵이 짚어주지 못하는 남새밭 옆 지름길을 알고 있어서 이곳은 그럭저럭 ‘내 동네’다. 이 시리즈는 내가 드디어 이곳에서 떠날 것 같은 예감에 쓰는 사라져 갈 것의 기록이다. 어쩌면 낡은 애착이다. 매년 이사갈 생각을 했지만, 1년만 더 있다가, 1년만 더 있다가 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이사갈 아파트를 알아보다가도 관리비가 내 월세에 준하기에 접었다. 아파트 값을 적금으로 묶어두면 이자라도 나오고, 나는 아파트 값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아마 나는 임당동에서 계속 살아질 것이다. 떠날 곳 없어서 시간은 힘이 세다.


주구성원은 떠나온 사람들이다. 창을 열어 뒀을 때, 지나가는 언어가 달라졌다. 한국어에 중국어가 섞이더니, 요즘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어에 어쩌다 한국어가 섞였다. 외국인 유학생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네를 지탱했다. 당근마켓 커뮤니티에서는 우범지대로 지목됐다. 댓글에서는 밤길 조심하랬다. 필라테스 마치고 집으로 오는 밤길, 거리의 8할은 퇴근한 외국인들이다. 생김새가 보이지 않아도,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한국인과 외국인은 구분되었다. 한국인은 혼자 있고, 외국인들은 대체로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내 삶은 우범지대를 관통했다. 한때 모범생이었던 기억을 지우듯, 내 방 모서리마다 핀 검은 곰팡이를 물티슈로 닦고 락스로 지웠다. 락스가 흘러내린 하얀 얼룩은 내가 범해진 흔적일 것이다. 네 번째 건물주는 벽마다 흘러내린 락스 흔적을 묻고 나서 말을 잇대지 못했다. 청춘이 지나고 보니, 나는 나의 이방인이자, 우범지대의 왕이다. 나는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수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타고난 한국인이라 주권의식은 자명했다. 그러나 표백된 삶은 그저 생이다. 가까스로 생긴 여유로 내 영토를 기록한다.


지방 소멸 속에 내가 지나치게 있다. 아니, 소멸은 구시대적 표현이다. 임당동은 외국인 중심으로 손바꿈 중이다. 코스피처럼 외국인이 월세를 끌어 올린다. 임당동, 조영동은 여러 다른 동과 행정적으로 ‘북부동’으로 묶인다. 동이 동으로 묶이는 분류 위계는 이해할 수 없지만, 숫자를 보면 이해했다. 인구수가 빈약했다. 2025년 5월 기준, 북부동은 일곱 동을 묶어도 내국인 16,284명, 외국인은 6,558명(경산시 홈페이지)으로 인근 대학교 재학생 수보다 적었다. 아파트가 밀집한 대평동에 내국인이 밀집하므로, 임당동 인구비는 1:1에 수렴한다고 해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이 글은 살아가며 살아지는, 사라지는 것의 말이고자 한다. 가장자리에도, 우범지대에도, 사람이 산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나든, 너든, 왕이 아닌 어떤 것이.


코스피는 오르고 또 오른다. 돈을 버는 쪽은 외국인이다. 중국집 알바생을 보면 청년실업률이 민망해진다. 나는 여기든 거기든 물려 있다. 올해는 이사갈 수 있을까. 마음을 싼(wrap) 건지, 싼(pee) 건지, 그래서 내가 싼(cheap) 건지, 글쎄다. '안녕'을 번역하면 hello일지, bye일도 글쎄다. 너를 이곳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에게 건넬 안녕이라는 거짓말을 하기도 조금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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