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17
우리는 한번 더 순례길 점프를 하기로 했다. 어제 20km를 걷고, 다시 기차로 이동해서 레온역에 내린 다음 사내를 관통해서 알베르게를 찾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몸은 전날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나부터 발걸음 옮기기가 힘들다. 오늘 하루는 쉬면서 차량으로 폰페라다까지 가기로 했다. 대여섯 날을 점핑한 것이다. 일단 기차로 움직이기로 하고 레온역으로 찾아갔다.
레온은 꽤 큰 도시다. 다운타운과 연결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30만 명이 넘는다. 우리는 다시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http://www.aytovalverdedelavirgen.es/)는 레온 서쪽 외곽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었다. 아침에 배낭을 맨 순례꾼들과 반대로 가려니 왠지 몰래 반칙을 한 선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온역을 찾는 것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다운타운을 세 번 정도 돌다가 레온역 도착~ 우리가 탈 수 있는 기차는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고속버스를 알아보니 2시간만 기다리면 되고 터미널도 레온역 바로 옆이다.
버스로 폰페라다로 이동~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일부는 카미노와 나란히 달리고 일부는 카미노가 아닌 길로 지나간다. 걸었다면 볼 수 없었던 풍광은 탄광촌을 지나는 거였다. 군데군데 석탄 광석이 쌓여있고 산을 두어 개 넘어갔다. 분명 탄광이 운영되는 듯 하지만 환경이 태백시와 유사하다. 사람이 없고 대부분 가게가 오래 전 문을 닫은 모양새다. 어쩌다 보이는 사람들도 (당연한 거지만) 도시 사람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폰페라다는 탄광과 열차와 공장을 위한 배후 도시 느낌이다. 20분 정도 걸으니 까르푸가 나온다. 와인도 사고 햄도, 바게트도, 산양유도, 오렌지도 샀다. 지고 들고 50분을 걸어서 알베르게 San blas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일인당 10유로에 아침에 7시반 전에 퇴실하는 조건이다. 오래 걷지 않았지만 아침 8시 반 이후로 계속 움직였기에 지쳤다.
그래도 까르프 쇼핑으로 상은 푸짐~ 특히 와인이 달지 않고 떫지도 않으면서 깊은 맛이 났다. 3.5유로라서 크게 만족~
어제 만난 크리스토프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변호사로 마드리드에서 일하고 있단다. 우리 일행을 찾아와서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한국 사람이 친구라서 한글 파닉스는 된단다. 페북 메신저를 내밀며 자신의 한국 친구(박@랑)에게 인사를 해달란다. 우연히 사아군역에서 크리스토프를 만났고, 우리는 카미노를 걷는 한국 일행이다.... 뭐 이런 식으로.
크리스토프가 변호사로 일한다고 해서 장난말을 걸었다. 한국 속담(?)에 'Lawyer is liar'란 말이 있다고 하니, 자기도 아는 말이란다. 그리고 맞는 말이란다. 내가 "Christoph is not liar"라고 하니 "Sometimes"라고 받으며 껄껄 웃는다. 그냥 느낌이 있다. 꼭 언어로 표현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아도 나쁜 놈인지 아닌 지 80프로 확률로 알 수 있다. 나머지 20프로는 겪어봐야 아는 거고~ 크리스토프가 진솔한 사람으로 느껴져서 같이 사진 찍었다. 페메로 사진 보내주겠노라 했지만 서울에 산다는 박@랑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크리스토프는 더더욱 찾을 수가 없다. 그냥 포기~
깊은 말은 못해도 세계사 지식을 동원해서 사람 사는 얘기를 간단히 하면 여러 나라 놈들과 대화하는 게 재밌더라. 확실히 여행의 조미료가 된다. 맥락 없이 수다떨기 말이다. 이럴 때 외국어 유창성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나는 이중언어 조기교육에 찬성이다. 다만 한국의 외국어정책은 또라이의 최상급이다. 현재 초등영어는 폐지가 답이다.
집에서 짐을 쌀 때 소중하게 챙긴 블루투스 키보드를 정작 배낭에 넣지 못했다.
기나긴 길을 걸으니까 글감이 마구 솟는다. 산티아고 카미노는 글감 화수분~
블루투스 키보드는 스승인 박동섭 선생이 하사한 건데,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키보드 없이 폰에 엄지로 글을 쓰려니까 자꾸 맥락이 끊어진다.
예전에 오키나와 해변의 낭만적 호텔 부속으로 3평 짜리 로그하우스를 보고, 여기서 한달만 살면 책 한 권 쓰겠다 싶었다. 난 그저 어느 곳이든 배낭 매고 걸어다니면 원고를 쓸 것 같다. 물론 세상에 내놓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일기처럼 쓰는 걸 말하는 거다.
키보드가 그리운 만큼 열심히 머리속에서 쓰고 있다. 어쩜 키보드가 있으면 암것도 못 쓸지도....
결핍이 힘이다.
지금 오전 11시. 레온 기차역에서 빈둥거리는 중이다. 잠을 설쳤더니 졸립다. 열흘 동안 빵만 먹었더니 진정 된장찌개, 김치, 밥이 간절하다. 덕분에 배가 홀쭉해졌다^^ 감사한 일이다.
'우분투'를 키워드로 쓰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일단 머리에 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