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도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2019.9.5)
1.
태호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태호는 마치 계획이라도 한 듯이 한 주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 한 주는 내게 불안감과 분노를 선물한다. 7월 이후 6주 동안 번갈아가며 수업 태도가 극명하게 갈렸다. 과연 오늘은 어떨까. 오늘도 내게 속상함을 주는 날이라면 이런 널뛰기 수업태도가 우연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신신당부를 했다.
“태호야, 그동안 한 주 걸러 좋은 태도를 보였어. 지난 주에 태호 때문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오늘은 어떨까? 선생님은 사실 좀 걱정돼. 지난주의 절반만 해도 난 행복할 거야.”
2.
신신당부가 오히려 불량한 수업태도를 견지하라는 당부처럼 된 듯 하다. 태호는 패턴을 유지했다. 난 화가 난다기보다 약이 올랐다. 일부러 그런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호주 선생님이 설명하거나 질문할 때 자리를 피하거나 등을 돌린다. 물론 태호가 알아듣는 수 없지만, 내가 옆에서 즉각 통역을 하고 질문도 간단하기 때문에 좋은 태도를 보이는 날은 밝은 얼굴로 호주 선생님을 응시하며 집중한다. 진짜 격주로 다른 태도를 보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걸까....
3.
이 주 전, 태호가 중요한 말을 했다.
“시하와 길게 대화할 때는 나는 듣기만 해야하고, 나랑 상관없는 말을 하니까 지루하고 견디기 함들어요.”
태호의 말은 재해석해야한다. 태호에게있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상황만이 수업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자기에게 묻지 않는 상황,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는 상황은 수업이 아니다. 시끄러운 소음이 있는 곳에 강제로 끌려온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데(좋은 태도를 보이는 날에는 어느 정도 알아듣는다) 수업상황이 자신을 옥죄는 느낌일 수 있다. 20여 년 전 캐나다 연수 갔을 때 나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연수를 주관하는 대학 초청 만찬장에서 호스트인 부총장에게 내가 말했다.
“캐나다에서 난 바보가 된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난 매우 자신감에 넘치는 스마트한 교사로 인정 받는다. 나도 자부심이 남다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된 느낌이다.”
네이티브 스피커와 수업하는 것은 갑절 이상의 부담이 있다. 더구나 옆의 친구는 호주 선생님과 곧잘 영어로 대화하고 칭찬 받기 때문에 태호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이해한다. 그런데 격주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4.
“태호야. 수업은 형식이야. 경우에 따라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어. 하지만 수업 상황에서는 견뎌야 한단다. 자기 마음내키는대로 행동해서는 안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야. 선생님은 네 태도를 네가 결정하는 아이라고 생각해. 집중하지 않아도 자리를 갑자기 뜨거나 발로 땅을 파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런 당부를 하루 전부터 여러 차례 했다. 과연 태호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도노반파크에 도착해서 내릴때부터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갑자기 아킬레스건이 아파서 제대로 걸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수업에 거의 참가하지 않는다. 태호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호주 선생님들은 시하와 소통하는 시간이 더욱 늘어난다.
화가 나서 태호에게 격한 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 마음은 태호가 완벽한 옵저버로 자유롭게(수업에 참가하든 말든)놔두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한 구조다. Jo선생은 부드럽지만 엄격하다.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나의 격한 말은 호주 선생님들도 눈치로 알아듣는다. 그러지 말라는 경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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