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 마사오의 수학연주회

중학생을 위한 생각하는 수학

by 박달나무

모리타 마사오 선생이 진행하는 <(한국의) 중학생을 위한 수학연주회>가 줌미팅으로 있었다. 물론 영원한 파트너 박동섭 교수가 순차통역을 했다.

오늘의 연주 메인은 "3+2=5"였다. 등호의 의미, (자연)수의 의미로부터 출발하여 '숫자 1의 수학자' 프레게의 아이디어로 발전하여, 장자의 호접몽으로 수렴되는 스펙터클 연주회였다.

(솔직히 따라가기 힘들었다)

내가 중학생으로 돌아가서 오늘 수학연주회에 참가했다면 어땠을까. 매우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힘들다고 외면하지 않고 모리타 마사오 선생의 "저 말들"을 알아내겠다고 다짐하며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말의 힘> 언명이 떠올랐다.


1.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트위터에 말의 힘에 대한 개념을 풀어말한 적이 있다. 찾아보니 5년 전 일이다.

선생은 "학력"이 시험성적이 아닌 결성적(뭔가 부족한 상태의 성격) 개념이라고 풀었다.

"배우는 힘은 ‘결성태(欠性態)’로서만 존재한다. 뭔가 부족하다는 자각의 강도를 가리켜 ‘배우는 힘’이라고 부른다."

오늘 나는 학력이 상당히 높은 학생이었다. 뭔가 많이 떠오르지만 하나로 엮기에 부족한 나를 확인했다. 부족을 자각하는 시간이었으니 충분한 학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우치다 선생은 <말의 힘>에 대해 "말이 늘 과잉이든지 아니면 부족하든지 해서 아무리 해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에 닿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난 전율을 느꼈다.

나는 수학연주회 내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닿지 못해 상당히 괴로웠고 답답했다. 나는 상당히 센 말의 힘을 지니고 있구나 확인했다.


2.


두 달 전 진행한 제2회 중학생을 위한 수학연주회 때 모리타 선생은 부분(집합)이 전체(집합)보다 적다는 개념은 유한의 세계에서만 성립한다고 지적했다.

자연수 전체 집합의 원소 수와 자연수 짝수 집합의 원소 수는 같다는 것이다. 흔히 홀수가 없는 짝수만의 세계는 자연수 전체보다 작은 집합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모리타 경우 전체와 부분에 대한 오해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풀렸다는 거다.

오늘도 인트로에서 다시 소개하며 공부란 계속해서 오해의 알에서 깨어나는 지속적인 작업이라고 말한다.

개념에 대한 오해, 즉 나의 무지 상태는 당연한 것이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마찬가지다. 무지의 늪에서 당당하자고 마음 먹었다.

모리타 선생은 수학이야말로 세상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공부라고 역설한다. 격하게 공감한다.

수학 is All that thinking!!!


3.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장자(壯子)의 호접지몽(蝴蝶之夢) 등장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호접몽을 일장춘몽과 비슷한 느낌으로 소화한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기분 좋게 훨훨 날아다녔다고 하니, 비현실적인 호사를 잠깐 누리다가 말았다는 의미로 왜곡된 것이다.

장자가 누구인가? <노장>이라고 말할 때 그 장자 아닌가.

장주(장자의 본명)가 꿈에서 나비가 됐다가 깨어나서 다시 장주로 돌아갔을 때, 장주와 나비 중 어느 한 쪽이 없어도 호접지몽의 내용은 사라지고 만다. 즉 <호접지몽> 스토리는 장주에게 심어진 것도 아니고 나비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체를 둘로 세울 수 없는 노릇이다.

장자가 강조한 건 자신과 나비를 구분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주체와 객체로 구분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서구 주류 철학과 다른 얘기다.

그러나 서양의 사상사에도 장자에 대응하는 사유가 있다. 장자와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에서 활동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오직 변화만이 있을 뿐이며 구분된 구체물은 없다고(우주는 하나로 오직 돌고 돌 뿐) 생각했다.

그에 따라 장자의 호접지몽에 매우 유사한 스토리텔링이 있으니 크리스 반 알스버그(미국; 1949년 생)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그림책이다.

4.


치과 의사 비보 씨는 할머니의 아픈 이를 뽑아주었지만 할머니로부터 치료비 대신 무화과 두 알을 받습니다.

“이 무화과는 아주 특별하다우. 선생이 꾼 꿈이 진짜로 일어나게 될 거요.”

무심코 무화과를 먹고, 진짜로 꿈이 현실로 된다는 걸 알게 된 비보 씨는 마음 먹은대로 꿈을 꿀 수 있는 연습(세상 최고의 부자가 되는 소원)을 한 후에 남은 한 알의 무화과를 먹으려고 하는 순간..... 늘 함께 지내는 반려견 마르셀이 무화과를 먹어버립니다. 비보 씨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강아지 마르셀에게 저주의 말을 날립니다.

(원문 마지막 부분)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비보 씨는 몹시 어리둥절했어요. 자기가 침대 위가 아닌 침대 밑에서 자고 있었거든요. 그 때 갑자기 눈앞에 얼굴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얼굴이었어요! 그 얼굴이 말했습니다. “자, 이제 산책 나갈 시간이다. 이리 온, 마르셀.” 그리고 손이 쑥 들어오더니 자기를 잡아당겼어요. 비보 씨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지요. 하지만 개 짖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5.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가 장자의 호접지몽을 그대로 옮겨온 것을 알 수 있다. 다음날 아침의 상황은 비보 씨의 꿈인가, 마르셀의 꿈인가.....


6.


놀라운 일은 독일의 수학자 프레게(Gottlbo Frege, 1848~1925)가 주장한 수 개념을 함수와 역함수를 도입하여 자연수를 대응의 의미로 해명한 것이다. 프레게는 평생 "1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한 수학자이다.(프레게에 대해 작년 강원도교원연수원에서 진행된 수학교사를 위한 모리타 수학연주회에서 처음 들었다) 하지만 수학사에 족적을 남기는 결과를 정리하지 못하고 100년 전에 세상을 떴다.

모리타 선생도 자연수 "1"을 상당히 강조했다. 모리타 선생의 유일한 그림책 <개미가 된 수학자>는 그의 고민을 압축한 작품으로, 개미에게 숫자 1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까를 표현했다.

함수와 역함수는 용어가 어려운 것이지 <중학생을 위한 수학연주회>를 감상하기에 복잡한 내용은 아니다. a가 b로 변하는 관계가 함수라면 b가 도로 a가 되는 변화의 방향을 거꾸로 바꾼 것이 역함수라는 정도만 알고 가면 된다. 역함수란 말을 아예 쓰지 않아도 되고, 더 나아가 함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a→b→a, a가 b가 됐다가 다시 a로 돌아오면 처음의 a와 나중의 a는 같은 a일까 다른 a일까? 이런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 사람인가..... 이런 질문과 같다.

a가 처음부터 언제나 변함 없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b에 대응했다가 다시 b는 a에 대응해서 비로소 a의 존재가 선명해졌다는 해명이 대단한 것이다. 아이디어의 출발은 프레게에 있고, 고민의 과정은 모리타 선생에게 있었다. 그렇게 모리타 선생은 자연수의 개념을 대응 관계로 설명했다. (수학연주회 내용을 손실과 왜곡 없이 전달할 능력이 나에겐 없다)

7.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응관계>에 있다. 존재를 대응으로 본다는 건 홀로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는 것이다. 세상에 나, 너, 우리, 그것, 저것, 온갖 잡다한 것들이 존재한다. 실체 없이 개념만 존재할 수도 있다(ex; 사랑, 절망 등)

그런데 독립된 개념과 물체가 언제부터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나? 우리는 존재하는 물체와 개념을 가지고 그 다음을 조작하기 위한 고민이 많았지만, 물체와 개념이 존재하기 전 단계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내가 어찌해서 존재할 수 있었는지 알고자 한다면 나와 대응하는 짝을 알아야(찾아야) 한다. 짝이 없으면 나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짝이 <나>는 아니다. <나>는 짝의 짝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수학적으로 a→b, b→a 변화를 나타내는 함수로 생각할 수 있다. 중간에 b가 매개하지 않는다면 a가 존재할 수 없다. b는 <나>가 아니다. 그러나 <나>를 인식하기 위해 b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b에서 되돌아온 a는 처음의 a가 아니다. 그러나 처음 a와 되돌아온 a가 대응관계로서 "같다"고 인정한다.

프레게는 숫자도 그렇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단)다. <하나>에 대응하는 <또다른 하나>의 매개에 의해 되돌아온 <하나>가 <1>로서 존재한다. 숫자 <1>속에 대응관계(함수)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가슴 뛰는 설명이다.


8.


듣는 순간 모리타 선생이 단순히 100여 년 전 프레게 이론을 우리에게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Morita theory를 완성했다는 걸 직감했다.

철학적으로는 100년 전 세상에 나온 마틴 부버의 <나와 너>가 소환된다. 인류학적으로는 최근의 존재론적 전회(Ontology Turn)로 설명할 수 있다.

작년 아이 둘과 걸었던 스페인 순례길 마자막날 일기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2019.11.25; 산티아고 광장에 서다)

까미노 걷기의 진짜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마치 위빠사나 명상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몇 번 언급한 존재론적 전회(Ontology Turn)의 실현태로 나타난다.

위빠사나 명상을 하면 내가 아프다는 자각은 버리고, 고통이 내게 온 것을 알고 나를 찾아온 고통을 ‘본다’는 상태에 이른다. 이것은 내가 고통을 본다는 표현보다 고통이 보는 ‘나’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거다.

즉 주체가 둘로 나뉜다. 나를 보는 주체로서 고통이 있고, 나를 인식하는 고통을 바라보는 내가 있다. 내가 나를 인식하지 않고 나 외의 주체의 시각을 사후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다.

서구의 근대는 신의 피조물로서 인간이 아닌 우주의 주체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라고 내세웠다. 칸트가 강조한 ‘이성’을 탑재한 인간이다. ‘혼자서도 잘해요’의 배경은 이성을 가진 인간의 사고와 판단이 홀로 가능하다는 패러다임의 성격이다.

상대방이 나를 보는 시각을 수용하여 사후적으로 자신을 자각하는 아마존 밀림 원주민의 사고방식을 서구의 인류학에서 존재론의 전회(전환이 아닌 ‘본질로 복귀한 것’으로 본 것)로 명명했다. 인식론이 주제였던 철학의 역사를 일거에 바꾼 언어철학의 등장(비트겐슈타인)을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로 이름 지은 것을 차용했다. 인간 존재에 대한 획기적인 ‘재발견’이다.

(중략)

스페인 까미노를 걷는 효용성은 안전하고 편안한 잠자리와 식당이 연속적으로 있다는 물리적 조건에 있지만 본질적 효과는 부대끼는 사람이 아닌 자연환경의 시각에서 자신을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경험에 있다. 내리쬐는 태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입장에서 (햇빛의 입장에서) 바라본 나를 태양 속에서 발견한다.

숲의 신선함을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숲의 입장에서 발견된 나를 사후적으로 길어올리는 것이다. 옥수수와 밀의 입장에서 포획된 나를 옥수수와 밀을 바라보며 사후적으로 나를 포착한다. 목장의 소와 양을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 안의 가축이 바라보는 나를 소와 양 속에서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뭔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나 또한 걷고 나서 사후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이성으로 무장하고 홀로 우뚝 선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9.


출발은 <3+2=5>에서부터였다. 귤 3개와 사과 2개를 합친다고 "다섯"이 탄생할 수 있느냐하는 질문부터 본론은 시작됐다. 종착점은 장자의 호접지몽이었다. 하아~ 어렵다 쉽다를 넘어 숨가쁜 강의였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며 내가 된 것인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대로 구현한다. <매트릭스> 다음 해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 <메멘토>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과 조작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팩트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온전히 팩트 홀로 존재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개념이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짝"을 찾아서 우리는 짝끼리 대응하는 "구조"를 읽어야 한다.


10.

26일 중학생을 위한 수학연주회에서 다양한 연주곡 레퍼토리가 있었다. 강의를 준비한 모리타 선생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대응의 관계로서 파악한다면 0과 1사이의 실수 집합과 실수 전체 집합의 크기가 같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구조가 중요하다고 모리타 선생은 강조했다. 모리타 선생은 고오조(こうぞう;構造)라고도 하고 structure 라고도 쓰고 말했다.(모리타는 영어가 자유롭다)

수학을 공부하고 이해하는데 있어 구조가 중요하다. 수의 구조를 고민하는 시작이 중학생부터라고 생각한다.

구조에 대응하는 말은 (아마도) 내용이라고 본다. 흔히 말하는 나무와 숲 관계로 볼 수도 있다.

수란 무엇인가?

2020년12월26일에 진행한 제3회 중학생을 위한 수학연주회는 이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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