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때 들은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엉뚱한 소리를 잘하고, 생각난 게 있으면 혼자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자기에게 꽂히는 놀이에만 몰두하는 아이를 표현하기에 '4차원'보다 알맞은 단어가 없었나 보다.
심각하게 던진 말 같진 않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특수교사 출신이기에 같은 교사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특히 '발달지연'이나 '부적응 행동'과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혹시 내가 잘못 키운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혹시 12시가 넘도록 재우지 못한 날들 때문일까? TV 만화 한 시간 넘게 보여주던 날들 때문일까? 집에서는 교사처럼 굴지 않으려고 마냥 허용적으로 대했던 훈육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동생의 탄생 이후 생긴 욕구불만의 표출일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요인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해님이는 이미 독특했다. 예전부터 해님이는 한시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 않았다. 친척들이 "저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냐."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오죽 심하면 해님이에게 '딘전딘전'이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딘전딘전하다'는 서성서성하다는 뜻의 전남 사투리였다. 특별한 용건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해님이의 모습은 '딘전딘전' 그 자체였다.
돌전에 기기를 생략하고 걷기부터 시작한 이유도 빨리 돌아다니고 싶어서였는지 몰랐다. 평범해 보이는 이 세상도 갓 태어난 아기에겐 '4차원'으로 느껴질 만큼 새로운 세상일 테니 말이다. 책장의 책을 죄다 꺼내고, 장난감 상자를 뒤집어 놓고, 신발장, 옷장, 부엌 수납장 물건을 다 끄집어 내는 것도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그만의 의식이었다. 그리고 창고와 짐 쌓인 베란다도 기회가 될 때마다 호시탐탐 노렸다. 아직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정리를 해도, 깔끔한 집 안 상태는 유지되지 않았다.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모두 모두 제자리"나, "차곡차곡 쏙쏙 차곡차곡 쏙쏙 차곡차곡 쏙쏙"과 같이 내가 알고 있는 정리 노래를 전부 불러봐도 소용없었다. 물건 한 개를 제자리에 넣어놓는 동안, 물건 다섯 개가 밖으로 나왔다. 정리하는 속도보다 어질러지는 속도가 빨랐다.
예전에 <그로잉맘 내 아이를 위한 심플 육아>라는 책을 보고 기질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다. 그 책에서는 아이가 기질을 구성하는 블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격이 형성된다고 했다. 그 블록의 종류는 1.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것, 2. 위험을 느끼면 피하는 것, 3. 다른 사람에게 민감한 것, 4. 감각이 민감한 것, 5. 파고들며 지속하는 것으로, 총 다섯 가지인데, 해님이는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블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곳저곳 탐색하느라 바쁘다,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친다,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면 갖고 있던 것은 팽개친다, 낯선 물건이나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놀이나 활동을 쉽게 싫증 낸다, 하루 종일 움직여도 쌩쌩하다. 집에서도 뛰기, 기어오르기 등을 하며 활발하게 논다, 산만하고 충동적으로 보일 수 있다 등...'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블록'에 대한 설명은 해님이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아이들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블록’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위험하다고 느끼면 피하는 블록’이나 ‘파고들며 지속하는 블록’은 매우 적게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게다가 ‘감각적으로 민감한 블록’까지 많이 가지고 있다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지기 때문에 탐색하고 싶은 것들도 더 많을 거예요. -그로잉맘
길에서 처음 만난 낯선 할아버지의 손도 덥석 잡는 해님이의 대범함은 '위험하다고 느끼면 피하는 블록'이 적은 결과였다. 한 장난감을 오래가지고 놀지 못하고 여러 장난감을 늘어놓았던 것은 '파고들며 지속하는 블록'이 적기 때문이었다. 반면,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블록' 만큼이나 '감각적으로 민감한 블록'도 많아, 해님이는 엄마가 듣지 못한 기계의 종료음, 핸드폰의 진동소리를 먼저 들을 수 있는 거였다. 책의 설명대로라면, 해님이는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들려서 탐색하고픈 게 많은 아이였던 것이다.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라면, 아이가 어지르는 건 당연했다. "꺼내지마!" "만지지 마!" "정리해!"라며 마냥 화만 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하지 마!" "안 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잠깐 멈추고, 긍정적인 말을 골라 말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 긍정의 말 중 하나가, 바로 "궁금했구나."였다.
아이가 주방 서랍을 뒤져서 뒤집개와 거품기를 꺼내고, 나무젓가락과 이쑤시개의 소포장을 전부 뜯어서 가지고 놀 때, 나는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고 말했다.
"해님아, 궁금했구나."
아이가 화장품 팩트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손톱 사이에 파운데이션이 스미는 순간에도, 나는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해님아, 너는 엄마 화장품이 궁금했구나."
"궁금했구나."라는 말에는 마법이 있었다. 그건 '산만한 아이'가 '자꾸 궁금한 아이'가 되는 마법이었다. 말 하나를 바꾸면, 혼날 일이 더는 혼날 일이 아닌 게 되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배움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면, 뒤처리가 번거로운 것쯤은 감당해야 할 것 같았다.
"발견했구나!"라는 말도 비슷했다. 해님이의 눈썰미는 매의 눈처럼 예리해서, 새로 생긴 물건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엄마, 아빠 간식용으로 몰래 숨겨둔 콜라나 아이스크림도, 특별한 날 주려고 숨겨놓은 장난감 택배 상자도 금세 찾았다. 앨범을 만들기 위해 인화해 놓은 사진 수십 장을 몰래 책꽂이에 꽂아 놓으면, 삐죽 튀어나온 모서리를 놓치지 않고 끄집어 냈다. 죄다 바닥에 흩트려진 데다 이미 몇 장은 이미 구깃 해진 사진 더미를 보고, 내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한 말이 이거였다.
"아이고, 우리 해님이가 발견했구나."
유난한 관찰력은 남편에게서 온 유전자의 영향인지 몰랐다. 프로그래머이자 엔지니어인 남편은 지적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분야에 해박했다. 새로운 기계에 관심이 많고 기능이나 구조도 금방 파악해서 쉽게 잘 다뤘다. 나는 해님이는 아빠 닮아 공대에 가지 않겠냐고, 코딩 교육이라도 조기에 시키면 어떻겠냐고, 농담을 하곤 했다. 하지만, 해님이가 아빠처럼 똑똑하고 탐구심이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런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 나는 해님이의 4차원 얘길 꺼냈다. 아이는 불 꺼진 방의 커다란 침대 중앙에서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남편도 해님이의 독특한 기질을 걱정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으로 인정해 주자는 생각은 동일했다.
"그런데 해님이에게 이 두 문장,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궁금하다'와 '발견하다' 말이야."
"오, 그러고 보니까 신기한데?"
"왜?"
"궁금증을 영어로 하면 큐리오시티(curiosity)잖아. 큐리오시티는 나사에서 화성에 보낸 탐사로봇 이름이거든. 그리고 발견을 영어로 하면 디스커버리(discovery)잖아. 디스커버리는 미국의 우주왕복선 이름이야."
"우와!"
참으로 근사한 남편의 이야기였다. 해님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두 단어가 이미 아득한 우주를 향해 쏘아 올려졌다는 걸 알려준 거였다.
해님이는 먼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다가 미지의 지구로 탐험 온 작은 영혼인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외딴 행성, 화성에 홀로 떨어진 탐사로봇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종일 화성을 돌아다니며, 카메라로 주변을 찍고, 레이저로 암석을 분석하며 자료를 수집하는 탐사 로봇처럼, 그도 외출이 끝나면 돌멩이 두 개를 손아귀에 보물처럼 꼭 쥐고 돌아오는 거였다.
그는'산만한 아이'가 아니라 '자꾸 궁금한 아이', '계속 발견하는 아이'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거대한 궁금증 안에, 무궁무진한 펼쳐질 위대한 발견 속에 해님이 몫이 있는 거였다. 그게 지금 자유롭게 만지고 느끼며, 창의의 나래를 활짝 펼치게 할 이유였다.
언젠가 해님이가 우주왕복선처럼 날아오르는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팔불출이라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펼쳐질 미래는 우주 스케일로 그려야겠다.부모에게 아이도 우주처럼 평생을 탐사해도 알 수 없는 무한한 신비, 무한한 가능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