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아주 오래 전, 우리나라 오디오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일을 하신 모 샵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소리란 어떤 소리일까요?"라는 대답에 그 분이 대답하시길 "이 세상에 좋은 소리라는 건 없습니다. 좋은 음악만 있을 뿐이죠."
생각하기에 따라 선문답 같은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달리 생각하면 오디오의 핵심을 꿰뚫는 우문현답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끓이고 끓인 사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을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좋은 소리"라는 말에는 정량적인 데이터가 아닌, 정성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기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렇기에 최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글ㅣ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소리의 왜곡입니다. 앰프의 스펙 중에는 THD(Total Harmonic Distortion)이란 게 있는데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총고조파왜곡"이라는 어려운 말이 되지만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원래의 입력 신호와 앰프를 거친 출력 신호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에 대한 수치로 당연히 수치가 낮을수록 입력 신호에 가까운, 다시 말해 앰프에 의한 왜곡이 적은 앰프입니다. 즉 이 수치가 낮을수록 소위 말하는 "원음에 가까운 소리"가 되는 거죠. 그렇다면 THD가 낮을수록 좋은 소리가 나는 앰프일까요?
일반적으로 THD는 증폭소자가 진공관보다는 트랜지스터일 때, 그리고 빈티지 앰프보다는 현대의 하이엔드 앰프일 때 낮습니다. 예를 들어 빈티지 프리앰프의 상징 같은 존재이자 이 제품 이후 출시된 프리앰프는 그 어떤 프리앰프도 이 앰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역사적인 명기인 마란츠 7C는 THD가 0.1%인데 비해 하이엔드 진공관 프리앰프 중에서도 손꼽히는 앰프인 BAT사의 REX라는 프리앰프는 THD가 0.005%에 불과합니다. 수치상으로는 REX 프리앰프가 마란츠 7C 프리앰프보다 20배 더 정확한 소리가 들린다는 의미이죠. 실제로 들어봐도 REX는 진공관 앰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포카리스웨트 광고처럼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더 좋은 소리이냐? 라는 물음에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는데요. 사람마다 듣는 취향이 다르고, 각기 장점이 있는 음악 장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이엔드의 정점에 있는 진공관 프리앰프도 솔리드스테이트 프리앰프에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CH Precision이라는 스위스의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출시한 L1이라는 솔리드스테이트 프리앰프는 THD가 0.001% 이하입니다. 그렇다면 L1 프리앰프에서 더 좋은 소리가 나느냐? 글쎄요, 이 정도면 감성의 영역이지 성능의 차이는 아닙니다.
THD가 낮다는 것은 소리에 변화가 적다는 뜻이고, 이는 다시 주파수 대역 별로 소리가 고르게 분포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해상도가 좋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대역 간의 밸런스가 좋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말이고, 이는 곧 주파수 대역이 평탄하다, 다른 말로는 선형성(linearity)이 좋다는 뜻입니다.
주파수 대역의 선형성이 좋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중음역대의 대역폭은 좁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보컬을 들을 때의 온도감이나 밀도감은 빈티지 진공관 프리앰프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빈티지 진공관 프리앰프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대편성 관현악곡에서는 빈티지 진공관 프리앰프에선 들리지 않았던,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 다음 고려해볼 것은 해상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해상도가 높을수록 좋은 소리가 난다고 믿습니다. 물론 해상도가 높을수록 좋은 소리가 날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해상도가 높다고 항상 좋은 소리가 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시절의 녹음은 녹음 장비의 한계 때문에 녹음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그렇게 녹음 상태가 좋지 않은데 그런 녹음을 요즘의 해상도 높은 시스템에서 들으면 어떻게 들릴까요? 연주뿐만이 아니라 잡음 역시 잘 들리게 되어 더 괴롭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클래식 녹음을 하는 스튜디오라면 B&W의 스피커는 상식처럼,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업계 표준처럼 여겨지죠. 그런데 그렇게 좋은 스피커가 왜 일반적인 가정집에선 보기가 어려울까요? 스피커의 높이가 높지 않아 일반 가정집에서도 세팅만 잘 한다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른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피커가 벤틀리 한 대 이상의 가격이라면 B&W의 플래그쉽 스피커는 그랜저 한 대 가격이면 충분히 살 수 있는데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높은 해상도 때문인데요. 하베스나 스펜더 같은 브랜드의 스피커가 BGM의 용도, 즉 다른 일을 하면서 틀어놓을 수 있는 스피커라면 B&W 스피커는 나도 모르게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그래서 다른 일을 못 하는 스피커입니다.
"음악 감상이 목적인데 집중해서 듣는 게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장시간 동안 음악에만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피곤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운드 엔지니어 중 한 명은 그래서 집에서 음악 들을 때에는 편하게 ATC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고 하고(이건 그 분이 말장난을 한 것 같은데 ATC 스피커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모니터 스피커입니다. 필자 주), 저 역시 앨범 리뷰를 위한 음악 감상을 할 때에는 모니터 시스템으로 음악을 듣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저가형 PC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소리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대역 간 밸런스가 좋은 소리를 좋은 소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대역 간 밸런스가 좋다는 말은 특별히 어느 대역이 부스트되거나 하는 것 없이 전 대역이 평탄하게 골고루 소리가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때 박태환 헤드폰으로 유명했던 비츠라는 브랜드의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보면 저음역대가 상당히 부스트 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Dr. Dre가 튜닝을 한 만큼 힙합에 어울리는 사운드에 맞춰 튜닝을 하다 보니 그리 되었겠죠. 오디오테크니카의 제품들은 중음역대가 상당히 넓고요.
실제로 대역 간 밸런스가 좋은 소리는 심심하게 들리기 일쑤입니다. 저역도 생각보다 덜 나오는 것 같고, 저음역대에 비해 고음역대의 소리가 많이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화사한 고역도 아니고요. 하지만 이렇게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오래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역 간 밸런스가 좋은 시스템이라면 아무리 시끄러운 음악이라도 시끄럽지 않게 들리고요.
제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오디오 선택에 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죠.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장르의 음악인지, 본인이 좋아하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부터 찾아보세요. 그리고 본인의 인생 음반 세 장을 골라보세요. 그 세 장의 앨범을 가장 기분 좋게 들리게 해주는 시스템이 선생님에게 맞는 시스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