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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문해력의 의미

김홍열의 디지털 카이로스

by 김홍열



스마트폰 영향으로 문자보다는 이미지나 영상이 더 많이 보급되면서 계속 이슈가 된 문해력 논란이 최근 한글날 전후에서 다시 증폭되고 있다. 주요 요점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어휘력이 부족해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기성세대들의 푸념이다. 대학 4년을 공부했으면서도 기본 한자어도 몰라 문서 작성은 물론, 이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추후 공고, 금일, 우천 시, 중식, 심심한 사과 등 지금까지 문제 없이 사용되어 온 단어의 의미를 몰라, 이 단어들이 포함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문해력 향상을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문해력 논란에 대한 입장은 세대별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2030세대의 경우 윗세대의 우려를 이해 못하거나 또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세대 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없고, 혹시 이해 안 되는 단어가 있다 해도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누리소통망(SNS)에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어 굳이 문해력까지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윗세대 입장은 강고한 편이다. 가장 기본적인 단어의 뜻조차 이해 못하는 이유는 독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에서부터 독서를 곤란하게 만드는 인터넷 노출 심화, 암기 위주의 학교 교육, 한글 전용 등 사실상 모든 이유를 갖고 와 2030세대의 문해력 부족을 비판한다.


이런 문해력 논란과 더불어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 관련 이슈도 진행 중이다. 이 이슈는 인터넷 초기에 급부상되었다가 잠시 잠잠해지더니 최근 인공지능 돌풍과 함께 다시 부각되기 시작됐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디지털 문해력은,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이 디지털 문해력의 차이에 따라서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발생하고, 이 격차가 커지면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일반 견해다. 디지털 문해력은 단어 몇 개 몰라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아날로그 문해력보다 몇십 배 중요하다.


디지털 문해력은 당연히 2030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많이 앞서고 있다. 2030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 환경 속에서, 청소년기에는 모바일 환경 속에서 자랐다. 2030세대는 인터넷을 정보 습득, 통신, 오락, 금융, 데이트, 생활 편리 등 사실상 모든 일상생활에 활용한다. 적지 않은 돈을 새 디지털 기기 구매에 쓰는 이들에게 디지털 문해력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손안에 핸드폰만 있으면 의사소통은 물론 모든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최근 챗지피티로 대변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2030세대의 디지털 문해력은 더 향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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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Pixabay)


반면 기성세대의 디지털 문해력은 이전보다 향상되고 있지만 아직 2030세대에 비하면 낮게 나온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3’에 따르면, 특히 70대 이상의 인터넷과 모바일 사용 비율은 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2018년 30퍼센트대에서 2022년 50퍼센트대로 올랐지만,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2030세대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2030세대와 달리 특정 누리소통망이나 유튜브 채널 시청 등 단순한 이용에 집중되어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문제 해결 또는 경제 활동 등 적극적인 디지털 문해력은 2030세대보다 매우 낮은 편이다.


디지털 문해력의 세대별 차이가 이런 상황에서 아날로그 문해력 논란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문해력 차이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기성세대가 2030세대의 문해력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문해력 논란은 인터넷 발달 이후에 일어난 일이고 그전에는 없던 일인가. 기록을 보면 문해력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구한말 한글 사용이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한자 사용을 못하는 젊은 세대를 개탄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런 사례는 한글 사용이 확산되거나 교과서에서 한문 비중을 줄일 때마다 언론에 보도되어, 젊은 세대의 문해력 부족 지적에 활용되었다. 60, 70년대 신문 기사 중에는 당대 젊은이들이 한자 실력이 부족해 잘못 쓰고 있다는 기사가 자주 나온다.


기성세대의 이런 우려에도 한자 사용은 계속 줄었고 현재 대부분의 세대가 이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현재의 기성세대는 그 이전에는 젊은 세대였다. 따라서 그 이전 세대의 한자 실력보다 매우 부족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선배 세대의 지적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세대가 2030세대의 문해력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해력이 아니라 일부 어휘력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어 몇 개의 뜻을 즉각 이해 못했다고 해서 어휘력이 부족하다거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단어와 문장이 필요한 이유는 소통하기 위해서다. 전근대에는 한자가 그런 역할을 했고 근대 전후로 해서는 한자와 한글이 공동으로 그 역할을 맡았다.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는 점차 한글 중심으로 사회적 소통을 유지했고, 최근에는 여기에 이미지, 영상, 이모티콘 등 더 많고 다양한 소통 도구들이 추가되었다. 소통 도구가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쉽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게 되었고, 그만큼 사회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으로 진전했다. 소통 수단이 확대되면서 역사가 진보한 것이다.


언어 특히 문자에 집착하거나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원활한 소통 유지에 도움되지 않는다. 문자주의에 집착하면 맥락에 대한 이해를 놓쳐 버리고 결국 교조적 주장을 반복하게 된다. 성경도 계속 쉬운 현대어로 다시 번역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읽지 못하는 오래된 버전의 성경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 나오는 한자 몇 단어를 즉각 이해 못한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또는 다른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수단을 찾거나 개발해서 소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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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인터넷 신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명 칼럼 '김홍열의 디지털 카이로스'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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