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항공사고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한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마음을 추스르고 장례 절차를 밟으려 한 유족들은 다시 한번 낙담하게 되었다. 고인과 함께 핸드폰도 망실되어 부고를 제대로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족들은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 카카오에게 고인이 갖고 있는 연락처 등 디지털 정보를 요청했다. 요청 받은 카카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협의해 희생자 카카오톡 계정에 있는 지인들의 연락처 정보를 유족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예외적 상황이었다. 제주항공사고는 온 국민적 관심이 쏠린 대형 참사라서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의 정보 제공이 가능했다. 카카오와 같은 온라인 사업자나 모바일 데이터 백업 서비스를 하는 삼성, 구글, 애플 등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아닌 경우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다.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의 경우 사업자들의 자율규제기관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만든 정책규정 중 ‘사망자의 계정 및 게시물 관련 정책’에 근거하여 정보 제공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이 정책규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사업자와 고객과의 관계에서 논란 발생 시 실효성 있는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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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규정에 의하면 사업자가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 등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상속인 자격으로 피상속인의 계정 폐쇄를 요청할 수는 있다. 이 경우에도 1. 삭제를 요청하는 계정이 피상속인의 계정이라는 사실 2.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 3. 요청인이 피상속인의 재산상속인이라는 사실 등이 확인되어야 가능하다. 피상속인 계정 폐쇄 요청만 가능하고 접속은 불가능하니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 사실상 사망과 함께 모든 정보가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규정이지만, 사업자들은 개인정보보호법처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
물론 일부 예외는 있다. 민법에서 상속인에게 이익이 되는 물권, 채권, 물건 등을 상속할 수 있는 것처럼 피상속인의 계정 중 사이버머니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정보의 경우 사업자는 관계 법령 및 약관에 따라 이를 상속인에게 제공할 수 있다. 민법의 상속 관련 법령을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논란의 여지는 존재한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정보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지 않아 상속인과 사업자 간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논쟁이 발생하면 사안별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사후 관리 방식을 정해놓지 않으면 이런 사례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적절한 법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참사가 디지털 정보의 사후 관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켰지만, 사실 국민 대부분이 자신의 데이터를 가상공간에 보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관련 법의 제정 또는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그동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한 ‘사후 보호할 고인의 디지털 정보 범위’를 규정하기 위한 국회 입법 활동이 18대 국회부터 있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정준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법률안이 지난달 11일에 제출되어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현 시기가 탄핵정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본회의 통과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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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기업 차원에서는 디지털 정보 유산 관리자 시스템을 도입하여 실행하는 사례들이 있다. 구글의 경우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한 사람에게 고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백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일정 기간 계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도 제공된다. 애플 역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용자가 ‘유산 관리자’로 지정한 사람들에게는 해당 계정에 저장된 고인의 디지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삼성전자도 4월 정식 출시 예정인 모바일 운영체제(OS) ‘원 유아이(One UI) 7’ 업데이트를 통해 ‘유산 관리자’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사망 등에 대비한 사전 준비 차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정보 처분에 대한 결정권이 개인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차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기업들의 유산 관리자 시스템이 특정 기업과 관련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완할 시기가 왔다. 여기에 더하여 유산 관리자 지정 없이 사고 발생 시 계정 접속이 가능한 수탁자의 자격, 상속 또는 열람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 접속 또는 열람 가능한 기간 등을 속히 만들 필요가 있다. 고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사후에도 디지털 정보를 잘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이미 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