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구글이 다시 고정밀 국내 지도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요청이 거절된 이후 9년 만에 다시 요구한 것이다. 이 축척의 지도는 건물 형태, 도로망, 지형지물 등이 정밀하게 나타나 자율주행차, 공간 기반 AR 서비스, 고성능 내비게이션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필수적이다. 구글은 현재 한국 내에서 제공 중인 1:25,000 축척 지도의 정밀도로는 충분한 품질의 길 안내 서비스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은 구글이 지도 데이터를 요구하면서도 한국 내에 서버를 두는 조건은 거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통제권과 관련된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같은 요청은 구글만의 사례가 아니다. 애플 역시 2023년에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을 한국 정부에 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 요청을 단호하게 불허해 왔다. 국토교통부, 외교부,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이 참여하는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는 국가 보안시설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위험으로 보고 있다. 비록 민감한 시설을 흐리게 처리한다 해도, 위성사진, 공개 정보, AI 분석기술과 결합하면 해당 위치를 역으로 유추해 낼 수 있다. 단순히 국내 데이터 반출 금지가 아니라, 정보가 국경을 넘을 때 생길 수 있는 안보·산업적 파장을 막기 위한 ‘디지털 국방’의 차원이다. 이스라엘,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비슷한 이유로 고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 문제는 최근 미국의 통상 전략과도 맞물리면서 더 민감한 외교 사안으로 떠올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5년 3월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위치 기반 데이터 반출 제한’을 대표적인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목했다. USTR은 한국의 규제로 인해 미국 기업이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으며, 이는 공정한 글로벌 디지털 무역 질서를 해친다고 주장한다. 특히 보고서는 “한국은 위치 기반 데이터 수출 제한을 유지하는 전 세계 유일한 시장”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이 이 문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새로운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기술 발전과 산업 성장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요구와 동시에, 자국의 안보와 데이터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구글은 ‘소비자 편익’과 ‘기술 혁신’을 내세우며 고정밀 지도 반출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방위산업 등 다방면에서의 전략적 자산 유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기업은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내에서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으며, 국내 서버에 보관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해외 플랫폼 기업은 규제를 회피하거나 예외를 요구하며 한국 시장에서의 데이터 접근 권한만 확보하려 한다. 이중잣대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고정밀 위치 정보는 단지 기술 향상을 위한 데이터가 아니다. 이는 국가의 디지털 주권, 안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핵심 자산이다. 건물 배치, 군사시설 위치, 산업 인프라 분포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된 고정밀 지도는 외국 서버에 저장되는 순간, 해당 정보에 대한 통제권이 한국 정부가 아닌 외국 기업이나 다른 정부 기관에 넘어갈 수 있다. 특히 구글이 서버를 한국에 설치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운영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자사의 독점적 분석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시대의 국경은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며 누가 관리하느냐’로 결정된다.
애플·구글 [연합뉴스TV 제공]
지도 반출 문제는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지리정보뿐 아니라 모든 자국민 데이터를 어떻게 보호하고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 연결된다. 최근 틱톡(TikTok)을 둘러싼 미국의 강경 대응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영상·음성·위치 데이터가 중국 기업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을 안보 위험으로 간주했고, 결국 매각 요구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데이터는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전략 자산이 되었으며, 한국 역시 의료정보, 교육 기록, 공공 인프라 데이터 등 다양한 부문의 데이터 주권을 강화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는 단지 기술이 아닌, 국가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정책의 문제다.
이제는 “지도”라는 단어를 단순히 지리적 공간을 표시하는 도구로 이해할 수 없다. 지도는 더 이상 종이 위의 지형이 아니라, 데이터로 구현된 디지털 영토다. 아날로그 시대의 국경선이 눈에 보이는 선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의 국경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서비스를 지배한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위치, 서버의 물리적 거주지, 접근 권한의 주체는 곧 국가의 영향력을 의미한다. 구글이 요청하는 고정밀 지도 반출은 기술 협력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지도를 넘길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영토를 스스로 지킬 준비가 되었는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