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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콩약사 Jan 28. 2020

엄마가 엄마야?

조부모 육아에 대하여.

일을 하던 인간 여자가 아이를 갖게 되면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외할머니냐, 친할머니냐, '이모님'이냐... 대한민국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최근 팬심을 품게 된 멋진 할머니 밀라논나님이 영상에서 이탈리아 워킹맘도 조부모 근처에서 의지하며 산다고 하시니 왜 이렇게 위안이 되던지요.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21세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아빠라고 불릴 인간 남자에게도 같은 보기가 주어지지만, 선택의 심각성이 굉장히 다르죠. 형평성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 별 수 없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 여자의 본래 엄마가 되시는, "친정엄마"가 짐을 나누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제가 저의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엄마는 저를 생각하셨으니까요. 

아이 시선의 끝엔 어김없이 "할머니"가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가졌을 때 엄마가 그러십니다. 

"너는 나처럼 발 동동 구르며 아이 키우진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 8살 된 첫째 (편의상 도토리^^)가 100일이 되었을 때 친정 옆으로 이사까지 감행하며 온전히 육아를 할머니한테 맡겼습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할마'가 되신 거죠. 할머니인 엄마는 할마, 할아버지인 아빠는 할빠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6개월부터 지금껏 도맡아 키워주셨으니 도토리의 육아에 대해서라면 저의 지분은 한 뼘도 되지 않지요.

출처: 구글이미지/ "할머니 사랑"

회사에서 저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모님' 면접에 눈물 콧물 다 빼본 어머님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이모님' 기분 상하셔서, 월급 못 올려드려서, 여행 가신다고, 등등 다채로운 사유로 주기적으로 그만두신다는 분을 아이 때문에 붙잡아가며, 금요일에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이모님 퇴근시간에 핸드폰 붙들고 눈치 보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시는 분들이 태반인데, 저는 얼마나 홀가분했겠어요. 조부모님이 아이를 키워주시면 가장 좋은 부분이 바로, "마음 편히"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마'께는 지극한 사랑과 책임감이 있으시거든요. 


조부모님이 손주를 마음 놓고 사랑하실 수 있는 이유는 책임질 부분도 없고, 기대하는 것도 없이 온전히 사랑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마'가 되어도 그럴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목도 잘 못 가누던 아이가 자라나 눈을 맞추고,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따르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서 이제 학교에 간다고 하니 엄마인 저보다 더 감격스러워하시는 것에는 제가 아무리 샘을 내어도 탐낼 수 없는 공고한 자리가 있더랍니다. "내 손주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고 있는 사랑, 기대, 그리고 책임감을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할머니는 육아 당사자가 아니라 보조자일뿐이므로 당연히 엄마의 교육철학을 따르는 게 옳지 않느냐고? 단순한 보조자를 원했다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육아도우미를 쓰지 왜 굳이 할머니에게 맡기겠는가. 혈육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믿기 때문 아니었나. 그러나 바로 그 지극한 사랑 때문에 할머니는 단순한 육아도우미로 머물 수 없는 것이다. 워킹맘의 삶은 여러모로 고달플 수밖에 없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돈만 있다고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 키우기는 더욱 그렇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박혜란)


'예비 초등'이라며 제가 이것저것 계획한 일들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반대 의견을 어필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이 또한 가장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내지 않고 할머니께 맡겨놓았던 제가 후불로 내야 하는 비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 할머니가 되셔서 어린 손주를 마음 놓고 사랑하실 수 있는 기회를 뺏은 것 같은 죄책감도 들고 말이죠. 


그래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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