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산' 죄

그러다 조금씩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던 것은

by 아난다
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

구본형의 < 나에게서 구하라 > 중에서

별로 땡기지도 않는 음식 앞에서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식당을 나온 그날

코스처럼 들른 까페에서

있는 힘껏 단 음료를 받아들고 나와 바라본

그 거리의 풍경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점심을 마치고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하는 동료들의 뒷모습이

자꾸만 좀비영화에서 본 그 장면과 오버랩되었습니다.


좀비, 살아있는 시체.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답을 살아내야 하는 삶.

나는 언제까지 이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나는 이 행렬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아니 과연 살아있기는 한 것일까?


이 답없는 질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을 때

저는 그 행렬을 떠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 사는 것 처럼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변화할 권리를

여한없이 누리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하루동안 죽어 있었던 것이라는

스승의 말씀은 저를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게하는 죽비였습니다.

버리고 온 것들의 기회비용을 떠올리면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거기서보다는 잘 살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쉼없이 살아있고자 있는 힘을 다하던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선 그 부자연스러움을 몸이 감당해내지 못하더라구요.

24시간 살아있고자 했던 저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죽음같은 시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소위 '번아웃'이라 부르는 완전탈진.


처음엔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던 것은

문제가 뭔지에서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로

질문의 방향이 바뀌면서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드라마틱한 변화가

가능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매 순간 할 수 있는 만큼,

이전 같으면 우습게 여겼을 아.주. 작은 변화들을 시도해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날 그 거리에 있던 동료들 중엔 같은 공간을 기쁨으로 느끼는 존재도 있었겠구나.

한치의 자율과 변화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그 공간에서도

자신만의 변화를 창조해가며

충만하게 살아있는 존재가 있었겠구나.

살아있음이란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어디서도 '살아 있음'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었구나.

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결단이나 도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시작이면 충분했던 거구나.


당신은 어떤 변화를 꿈꾸시나요?

당신에게 '살아있음'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함께 나누는 <살림명상>이

당신이 꿈꾸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다정한 동반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살리고 싶은' 그것을 살려내는데

든든한 배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

아난다 살림명상 (2).png

https://youtu.be/DnXrJauqEzQ?si=MCiUBsxQPzejsX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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