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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Jan 14. 2024

인간의 고통

몸과 마음

‘… 뭐지?..’ 


고통은 불현듯 찾아온다. 예상이 되지 않으니 맞닥뜨리면 의아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고통이 끝나고도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상사가 갑자기 일을 그만둬 직급에 맞지 않는 과분한 업무량을 맡게 되는 것, 이별을 통보받고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서 식음을 전폐하는 것,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은 말에 무엇하는가. 그런데 좋든 싫든, 다 지나고 나면 고통에 대한 역치는 올라가 있다. 그럼 전보다 쉽게 괴로워하거나 아파하지 않게 된다.  


그대가 현재 고통 속에 있는지, 다가올 고통에 두려워하고 있는지, 막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살아가면 고통의 싸이클은 계속 돈다. 그래서 공연히 징징거릴 게 아니라, 여력이 될 때는 차라리 고통을 제 발로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고통이 나를 후드려 패기 전에 선빵을 쳐서 역치를 올려놓는 것이다.


1. 몸

신체의 고통을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100km 행군이었다.  체질에 따라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곤욕을 치르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난 행군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완전군장으로 100km를 걷는 것은 괴로웠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다음날 오후에 도착했는데, 밤새 상당수의 부대원들은 군장을 내려놓고 버스를 탔다. 나도 계속 버티다가, 이튿날 아침에는 발이 부서질 것 같아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 무엇보다 장교로서 본보기를 보여야 된다는 생각도 강했다. 그래서 진통제 두 알을 먹고 남은 거리를 완주했다. 그때 포기하지 않은 장병들은 한동안 절뚝거리며 부대를 돌아다녔다. 그나저나 특전사들은 삼천리 행군을 어떻게 하는지 새삼 대단하다 느낀다.


2. 마음

오래전 크리스마스 아침, 묵언수행을 하러 산에 갔었다. 정확히는 위빳사나라는 인도의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50분 명상, 10분 휴식을, 밤 9시까지 반복했다. 밤이 되면 독실에서 잠을 청했는데, 창문으로 외풍이 매섭게 들어와 머리가 시려 모자를 쓰고 잤다. 그곳에 머무른 기간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자극으로부터 단절되니 정신이 명징해졌다. 나의 오감은 극도로 예민해졌으며,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던 심연의 감정들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과정에서 번민과 음울한 감정들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돌이켜보니 그때 느낀 생경한 감정들 중 외로움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내가 처음 느낀 고독이었던 것 같다.


3. 역치

몸을 혹사해 가며 진통제를 먹고 계속 걸었던 것은 어리석었고, 모두가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있던 시기에 버스를 4번이나 갈아타고 산속으로 들어간 결정은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다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처럼, 굳이 제 발로 고통을 찾아가 고통에 대한 역치를 높인 덕분에, 몸이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는 일이 잘 없으며, 스쳐 지나갈 외로움 때문에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게 됐다. 감히, 난 보다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을 견디다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도 아니고, 남들보다 열위한 삶도 아니다. 하지만 중간에 그만두면 고통의 역치는 낮은 상태로 머무를 것이며, 언젠가 불시에 다가올 수많은 고통에 취약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4.

고통스러운 시기를 떠올렸을 때, 각자 마음속 깊이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시절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으로 포장하더라도, 내가 줄행랑친 것인지, 정말 후회 없는 포기였던 것인지. 나아가, 그때의 결정으로 인해, 현재의 내가 또다시 곤경에 처해있는 것은 아닌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고통을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자. 그런데 다음번에 또 고통을 맞닥뜨린다면, 과거에 포기했던 경험에 속박되지도 말고 마음 굳게 먹고 견디며 슬기롭게 극복해 보자. 


일단, 몸이 힘들면 운동을 하고,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자. 

마음이 힘들면 책을 읽고, 마음이 아프면 심리 상담을 받자.

 

고통 苦痛  :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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