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함에 대하여

02.02.25

by ㅇㅈㄹ

보통 우리는 느슨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뭐든지 꽉 묶어서 짱짱하게 되어야지 완성도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신발끈을 묶을 때도, 머리를 묶을 때도, 관계를 묶을 때도. 왜 이렇게 느슨해, 더 짱짱하게 꽉 묶어야지 그래야지 잃어버리지 않지. 잃어버리기 전에 꽉 묶어, 그러다가 떨군다. 언니 피셜 뭐든지 70%만 사는 나는 살면서 너무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그런 나도 관계에 있어서는 꽤 짱짱하고 단단한 그런 연결고리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누가 뭐래도 내 편, 누가 봐도 내 사람, 누가 봐도 친해 보이는 사람들, 내 그룹, 내 친구들, 내 남자친구. 그래서 느슨한 관계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 볼 겨를도 딱히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반면 언제든지 누구나 왔다가 떠날 수 있는 외노자 생활에서는 꽉 묶어 짱짱한 내 것이 있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신분이든, 돈이든, 직업이든 특히나 관계는 더더욱. 그래서 여기에는 내 것이 없어, 나만의 무엇인가가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시기도 있었다. 여전히 그 생각은 일부 유효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최근 요즘 바뀐 것이라면, 이런 환경 속에서 느슨한 관계들이 주는 아이러니한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주변을 둘러보니 아주 느슨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그 끈이 나에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느슨한 끈들이 사실은 나에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끈을 따라서 가다 보면 그쪽에도 앗 나에게 이런 게 있었나? 싶어 하며 나를 인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 같으면 그러 사람들과의 끈을 당기고 당겨 짱짱하게 만들고 더 당기고 당겨 꽁꽁 묶어버리고 싶어 했을 텐데, 요즘은 그냥 느슨한 채로 놔둔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외국에 나와있어서인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느슨함이 꽤나 만족스럽다. 아주 느슨하지만,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그 보일 듯 말 듯한 끈이 오히려 나를 채울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아니면 내 안에 나의 자리가 훨씬 크고 중요해져서 나머지를 느슨하게 만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짱짱하게 꽁꽁 묶인 관계가 부담스러워서도 있을 거고,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외국 생활에 어느 정도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많은 이유들로 만들어진 그 느슨함이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는 않다. 느슨하기 때문에 언제든 그 끈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끈의 끝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몰라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 역설적인 매력을 좀 느끼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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