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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 Sep 17. 2024

비정상 귀농(1)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먹으며

정확히 사전적으로 구분된 것은 아니지만, 흔히 시골로 거주지를 옮겨 농사를 지어 그 수입으로 먹고사는 행위를 귀농이라 하고, 도시에서 벌어놓은 수입으로 여유롭게 시골 생활을 즐기기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귀촌이라고 부른다.

그럼 우리 가족은 벌어놓은 수입으로 먹고살지 못하니 귀촌은 아니고, 그렇다고 농사로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하고 있으니 귀농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시골살이를 비정상 귀농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단 우리 가족은 나와 아내, 그리고 세 마리의 반려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부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내 나이 기준으로 40대 중반쯤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살이를 준비했다.

양쪽 집안이 모두 도시 출신이니 시골에 사놓은 땅은 고사하고, 아는 일가친척이나 지인도 없었다.

그러니, 일단 살 집과 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부동산을 알아보는 과정은 고단했다.

일단 가격이 너무 비싸서 집이 딸린 땅을 구하는 건 포기했다. 그리고, 고정 수입이 없으니 임대도 부담스러워 저렴한 땅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방의 귀농지원센터를 돌아다니거나 귀농체험을 다니면서 알아봤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리산 근처의 한 귀농지원센터를 방문했을 때 저렴한 땅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자, 거기 직원이 그런 땅이 있으면 자신이 먼저 사고 싶다고 얘기하길래 이쪽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흔히 인터넷에서는 동네 경로당이나 이장을 찾아서 사정을 얘기하면 방법이 나올 수 있다는 글들이 있지만 시골은 도시보다 폐쇄적이다. 인구 소멸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그건 공무원들 얘기고, 일반 시골 주민들은 외지인이 동네에 들어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이가 젊으면, 이 젊은 놈이 동네에 들어와 술 마시고 행패라도 부리면 노인들뿐인 마을에서 대처할 수가 없을 테니 선뜻 도움을 주지 않는다.

저렴한 땅을 소개받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동네에서 괜찮은 땅이 좋은 가격에 나오는 건 동네사람들끼리 거래할 뿐, 외지인에게는 같은 땅도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결국은 부동산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의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매물을 보고, 원하는 종류의 매물이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었다.

일단 2~300여 평 정도의 땅이 평당 가격은 가장 비싸다. 300평부터 농지원부 등록이 가능한 데다가, 보통 100평 정도 집과 정원을 만들고 나머지 땅에서 텃밭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이 많고, 너무 큰 평수는 거래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저 정도 면적의 땅이 가장 비싸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저렴한 땅은 대부분 맹지인 가능성이 높다. 진입도로가 없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진입하기 위해 남의 땅을 거쳐야 하는데, 매매 후에 길을 막아버릴 수도 있고, 차량의 진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해당 땅을 높은 가격에 매입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대지보다는 밭(전)이나 임야를 구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물론 나중에 대지로 전환할 때 비용이 들긴 하지만, 구입가격면에서 대지와 전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시골은 대부분 지하수를 파야 하기 때문에 지하수를 파면 물이 나오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인근에 비슷한 집이 있으면 일단 좀 안심할 수 있다.

훗날 혹시 집에서 카페나 빵집 같은 가게를 할 생각이면 땅이 어떤 용도인지도 미리 살펴봐야 한다. 장사가 가능한 계획관리지역인지, 아니면 생산관리지역이나 보전지역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 용도는 거의 바뀌지 않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물론 계획관리지역일수록 땅값도 비싸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면 지하수 문제는 상수도로 이미 해결된 지역이 많은데, 이런 마을은 대부분 집들이 빼곡하게 붙어있기 마련이고, 이런 경우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꽤 중요한 부분인데, 단순히 인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더 다양한 문제를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구옥을 사서 집을 수리하는 경우 수많은 민원에 시달릴 수도 있다. 땅을 측량해 보니 이웃집 창고가 우리 땅을 침범했는데, 이럴 때 어설프게 얘기라도 했다가는 동네에서 고립될 수 있다. 반대인 경우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멀쩡한 창고를 허물라고 하거나, 택도 없는 가격으로 땅을 매입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저런 문제에 시달리기 싫으면 마을과 동떨어진 땅을 구입해야 한다. 우리가 그랬다.

우리 땅은 동네에서 험난한 산길로 3km 정도 떨어진 땅이다. 산지가 많은 강원도에서 마을과 이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건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전기도 없으니 끌어와야 하고, 물도 없으니 지하수를 파야 한다. 인터넷도 끌어와야 하는 등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을 겪게 된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전과 KT를 문이 닳도록 돌아 다녀서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럴 때에도 최소한의 위치는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

기존의 전신주에서 택도 없이 먼 곳은 전기를 들어오게 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내야 하고,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아니, 인터넷은 공공기관이 아니니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다소 외진 곳의 땅을 구입하려면 최소한 인접한 전신주가 있는지, 전화선은 어느 정도까지 들어와 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물론 나는 이런 걸 고려하지 못했다.

그때는 이런 것들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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