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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떠나는 여행
By 안바다 . Aug 09. 2017

지금, 우리의 집

- 가장 먼 여행

이따금 좁고 어두운 학원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면,
내가 쓰는 화장실이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아 울적해지곤 했다.
- 김애란, <자오선을 지날 때> 가운데



20년 된 복도식 84제곱미터의 아파트. 방 3개, 화장실 1개, 작은 거실, 거실보다 더 작은 주방,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집의 끝인 베란다가 보이는 공간.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일 초, 이 초, 삼 초... 열 걸음과 10초 정도면 끝에서 끝을 여행할 수 있는 공간. 오 분 정도면 모든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 이곳이 나와 내 삶의 동반자가 살고 있는 공간의 전부이다.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간명한 정보로 모든 것이 말해질 수 있고 모든 것이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은 이 공간에서 우리는 때로 싸우고 사랑하고 잠든다.


가장 큰 방에는 침대와 옷장과 화장대가, 거실에는 텔레비전과 그 맞은편에 푹신한 소파가, 주방에는 시스템키친과 식탁이, 작은 방에는 옷가지나 책들이, 자녀가 있다면 아이들의 침대와 책상이 놓이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 집들의 모습이다. 매체에서 광고하는 상품/사물들로 집안을 채우고 비슷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배치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비슷비슷한 사물들을 놓은 아파트에 산다고 자신만의 언어를 갖지 못한 채 꼭 획일화된 생을 소비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어디’를 여행하는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여행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의 보잘것없는 공간으로도 가장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엄격한 형식에서 가장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단형시 형식처럼, 84제곱미터의 공간은 아주 먼 낯선 땅이 될 수 있고 험하고 아득한 공간이 될 수 있다. 84제곱미터에 자금성이나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 촘촘한 기억이 담길 수 있고 그곳은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보다 더 깊이 교감하고 해석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침실은 때로 조명이 켜진 에펠탑 아래보다 더 낭만적일 수 있고 더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침대 옆 작은 스탠드의 낮은 불빛으로 하루치의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 행복이 조명의 모양이나 벽지의 색깔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들로 종종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상품을 구입하는 ‘순간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쇼핑 중독일 테지만, 사물들과 교감하며 느끼는 타당한 즐거움은 관계를 통해 얻는 행복이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된 우리 시대의 삶이란 결국, 여러 사물들 사이를 횡단하며 그들과 접촉하고 그들과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 맺으며 사는 과정이 아닐까. 타인 없이 홀로 살 수 없듯 우리는 사물 없이 살 수 없다. ‘상품’에 짓눌리는 삶은 비참하지만, 생활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사물’과 우리의 삶을 여행하는 일은 즐거운 모험이다.


Peter Menzel, 『Material World : A Global Family Portrait』, 1994


언젠가, 우리에겐 『헝그리 플래닛』과 『칼로리 플래닛』으로 유명한 피터 멘젤의 『Material World : A Global Family Portrait』 (한국어 제목은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를 읽었다. 세계 각국의 평범한 가정집 살림살이를 집 밖으로 끌어내어 사진을 찍은 독특한 이 책은 다양한 대륙의 다양한 가정이 사는 모습삶의 양식을 사물들, 그러니까 세간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집 안의 사물들이 집 밖에 늘어진 그 모습은 기이하고 낯설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멘젤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세상은 그들이 소유한 사물만큼이나 다양한 표정과 질감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떤 여행 가이드북보다 그 나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질감과 색채’를 잘 보여주었다. 타슈켄트 외곽에 사는 칼나자로프 씨의 삶은 온통 붉은색 카펫과 러그의 질감으로 감싸여있었고 도쿄에 사는 우키타 씨의 삶은 대개 플라스틱과 합성수지, 그리고 약간의 나무로 구성된 질감과 색채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퀄른에 사는 피츠너 씨 네의 전자제품과 가구, 그리고 오토바이 등이 그의 집 앞마당에 가득 널려 있었고 에티오피아 모올로에 사는 게투 씨 네 앞마당에는 절구와 절굿공이, 그리고 소와 말 등이 널려 있었다. 그들의 사물이 많든 적든,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든 수공업의 산물이든,  그들의 삶은 세간의 표면과 내부에 묻고 엉기고 뒤섞이며 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이 곧 그들의 삶이 된다. 자잘하게 나열된 사물들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그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자잘한 일상의 삶이 그려졌다. 그들은 그들의 사물 사이에서 살며, 사물 사이를 여행 중이었다. 책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거주 공간밖에 널려진 세간들 사이에 태연히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신들이 소유한 사물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를 닮은 우리의 소유물들은, 혹은 우리가 닮은 소유물들은 우리 사회에서 대개 상품이다. 그런 사회에서 상품과 사물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 있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상품과 사물을 가르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사물/상품들이 전시되고 소비되고 처리되는 방식에 있는 것은 아닐까. 대개 상품은 나보다 남을 위한(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들이고, 또 그것들은 새 모델이 나오거나 단지 지루해졌다는 이유로 처분되는 것들이라면, 사물은 대개 남보다는 나를 위한 것들이며 그것에 나와 가족의 짧고 긴 기억과 역사가 담겨 있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실은 애초부터 상품과 사물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태도에 달린 것인지 모른다.    


<사물들>, 안바다, 2015


몇 년 전 한 소도시에 갔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느릿느릿 돌아다니다가 버려진 물건들을 보았다. 작은 서랍장과 의자 같은 것들이 함부로 버려진 모습은 폐기물 관련 기본법 14조와 시행령 8조를 어긴,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것들과 함께 버려진 양변기가 덩그러니 놓인 풍경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본연의 문맥을 벗어나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20세기 초 누군가의 ‘작품’처럼, 누군가의 철 지난 아방가르드적 퍼포먼스였을까. 이런 유기는 온 가족의 엉덩이를 감싸주고 가족들의 그것들을 말없이 받아주던 이 사물에 대한 온당한 대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 남몰래 유기하는 것이 단지 폐기물 처리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비양심적인 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그것들과 함께 보낸 시간과 역사와 기억들마저 함부로 유기했다는 데 있다. 사물에 대한 태도는 곧 세상에 대한 태도다. 집 안의 사물들을 천천히 다시 보고 만져보고 사용하면서 그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그러니까 그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 비천한 공간이라도 행복한 공간일 수 있고, 낡고 조잡한 상품이라도 더없이 아름다울 수 있는 사물이 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둘러봤다. 이들은 얼마나 나를, 나는 얼마나 이들을 닮았을까. 이 집에 거주한 5년 동안 변함없이 꽂혀 있던 책장의 책들처럼 나 역시 하나의 사물로 그것들과 기대며 이웃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여행의 말 없는 동반자였다. 야근으로 늦은 밤, 오래된 냉장고와 텔레비전, 그리고 라디오는 나를 침묵으로 이해했고 때론 소음으로 위로했다. 우리와 사물이 우리의 거주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는지 고민해볼 때, 집이라는 공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건축적 공간으로만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놓인 사물들과 함께 구축된다. 그래서 집을 여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집의 사물들에게 떠나는 일이 된다. 우리가 규격화되고 단조로운 공간에서 살더라도 작은 사물 하나에 우리의 취향이 담겨 있다면, 가장 그윽한 구석에서 우리만의 색채나 질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은 세상에서 유일한 공간이 된다. 북유럽에 본사를 둔 조립식 가구회사의 제품들로 꾸며진 거실이라도 그것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그것들에 어떤 기억과 추억이 담기는가에 따라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멀리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된다.


우리의 집은 가장 가까운 공간이면서 실은 가장 멀리 있는 공간이다.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도 다시 우리의 공간으로 (언젠가) 돌아와야 하는 우리는, 결국 멀리 떠나는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우리의 공간으로부터 언제나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먼 곳보다 더 먼 곳, 아무리 멀리 가도 간만큼 다시 와야 하는 곳, 우리의 집. 매일 떠나지만 가장 먼 여행지인 우리의 공간. 지금, 내가 사는 이 공간을 떠나 다시 이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우리 여행의 전부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일은 결국 집을 떠나 집을 여행하는 일이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이 집과 집 사이를 떠다니거나 사물 사이를 경유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떠나온 곳과 떠나는 곳이 다르지 않은 우리들의 여행,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행, 그리고 가장 간편하고 저렴한 여행. 그곳에서 우리는 때론 설레고 때론 지루해하며 이미 여행 중이다. 이제, 오늘 밤 또 어디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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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맑은 날은 눈 부셔서 글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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